겨울나기의 시작, 김장 [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전호제 셰프
운이 좋게도 전라도 이모와 삼촌의 김치를 조금씩 받아먹는다. 이렇게 몇포기씩 택배로 받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김치를 보내주시는 분들은 연세가 많으시니 항상 '이번 김치까지만'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대한민국에서 김치를 직접 만들어본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주 김장 축제를 하는 농산물 시장에 가보니 카트에 생배추를 싣고 있는 분들은 60대 노부부가 대부분이었다. 무와 배추를 가득 실은 쇼핑카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녹색 얼룩이 가득했다.
불현듯 떨어진 배춧잎 조각은 마당 바닥을 가득 채웠던 예전 김장 날을 떠올리게 했다. 입에서 김이 솔솔 피어나던 1980년대 11월 말 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볕이 좋은 따뜻한 날이 김장 날로 정해졌다.
내 기억엔 아침 학교에 갈 땐 마당 한구석 빨간 플라스틱통 안에 절인 노란 배추가 가득했다. 오후에 돌아오면 김치는 마당에 묻어놓은 김장독에 들어가 있었고 식탁엔 배추 절인 것과 굴이 가득한 김칫소가 있었다. 주방 구석엔 아직 정리가 안 된 그릇들도 많았다. 어수선한 주방에서 뜨거운 노란 배춧국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김장 뒷정리를 도왔다.
사실 김장 날은 가을부터 준비해 온 고추 말리기와 젓갈 구입 등 가사 노동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다. 11월 말에 동네 어머님들의 품앗이로 마무리가 되는 셈이다. 동네 김장은 일주일 정도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은 우리 집이고 모래는 옆집, 그다음은 건넛집으로 작은 김치공장이 열리는 것이다. 그날마다 식탁에는 새로운 김치가 한포기씩 놓였다. 바로 품앗이로 받아먹는 일당이라고 할 수 있다.
김치맛은 다양했다. 멸치젓갈이 들어간 경상도 김치도 있었고 시원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서울 김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김치를 통해 부모님의 고향이 어디인지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김장으로 맺어진 동네 인심은 끈끈했다. 작은 것도 나눠 먹었고 아이들은 제집 드나들 듯 옆집 친구들을 찾았다. 눈을 감으면 당시 친구 집 구조가 영상처럼 펼쳐진다. 어른들도 아이들 우정의 깊이만큼 유대가 이어졌다.
김장이 제대로 익으면 잘 익은 김치는 서로 나눠 먹었다. 단단한 속대에서 얇은 잎까지 잘 썰어서 옆집 담장으로 보냈는데 주로 내가 이런 심부름을 하곤 했다. 저녁상에는 김장독에서 개봉한 김치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곤 했다. 특히 김치에 박아 놓은 무가 잘 익으면 속은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한 청량감이 있었다. 꾸드득 꾸드득 무 씹는 소리에 밥상은 온기가 가득했다.
예전처럼 김치를 직접 만드는 시절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다. 그걸 다 먹을 사람도 없지만, 품앗이를 하던 사람들도 없으니 말이다. 또 김장을 준비하는 때부터 쏟은 정성도 가정에서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가사 노동의 정도가 훨씬 높았던 1980년대의 단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올해 김장을 직접 하는 가구는 10가구 중 6가구라고 한다. 생각보다는 많은 분이 소량이라도 김장에 참여한다. 시장에 직접 가보니 올해 김장채소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내린 것도 일부나마 영향을 준 것 같다. 겨울 준비의 시작은 김장이라고 했다.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겨울 준비를 하는 11월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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