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로 한마음 된 韓·日 학생들…80여년 전 해저탄광 수몰사고 희생자들 넋 기려

동북아역사재단, 3박 4일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
둘째 날, 장생탄광 수몰 현장 방문

19일,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비에르고와 하기코엔고 학생들과 함께 장생탄광 수몰사고 현장을 찾아 비극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우베=뉴스1) 김정한 기자 =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생들이 1942년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던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의 장생탄광(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현장에 함께 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히스토리D와 함께 마련한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의 둘째 날인 19일,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전날 함께한 사비에르고 학생들과 다시 만났다. 여기에 이날 새로 합류한 하기코엔고 학생들과 함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양국 학생들은 장생탄광 수몰사고의 안타깝고 슬픈 진실을 공유했다. 아울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한일 양국의 과거사에 얽힌 갈등을 극복하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장생탄광 추도 광장에 세워진 추도비. ⓒ 뉴스1 김정한 기자

장생탄광은 1932년부터 조업을 시작한 해저 탄광이다. 극도로 위험한 작업 환경 때문에 조선인 노동자가 특히 많이 동원돼 '조선탄광'이라 불리기도 했다.

1942년 2월 3일 오전, 이 해저 탄광에서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해안 갱구에서 1km 이상 들어간 갱도에 바닷물이 순식간에 밀려들면서 작업 중이던 광부 183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희생자 중 70%인 136명이 조선인 노동자였다.

이 참사는 오랫동안 우베시의 역사에서 지워진 채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1991년 결성된 시민단체 '장생탄광의 '수몰 사고' 역사에 새기는 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묻힐 뻔했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바닷물에 잠겨 있는 장생탄광 갱도 입구. ⓒ 뉴스1 김정한 기자

2013년, 장생탄광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비가 건립됐다. 이를 계기로 '장생탄광 수몰 사고 역사에 새기는 회'는 본격적인 유골 수집에 나섰다. 마침내 지난 8월 장생탄광 갱도 입구에서 몇 개의 뼈를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이는 인골로 판명돼, 장생탄광 희생자들의 유골일 가능성을 높였다.

이날 한일 양국 고등학생들은 바닷물에 잠긴 갱도 입구를 바라보며 그날의 비극을 되새겼다. 해저 갱도에 갇혀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뿐 아니라 일본인 희생자들의 고통도 공감하며, 8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비극의 현장을 직시했다.

이번 역사 탐방의 진행을 맡은 이신철 히스토리D 총괄이사는 "유골 발굴이 시작된 후 희생자의 유족들이 이곳을 찾았다"며 "한 유족은 아버지 유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탄광 갱도 입구에서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오열했다"고 설명해 학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9일,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비에르고와 하기코엔고 학생들과 함께 장생탄광 수몰사고 현장 앞 바닷가에서 추도식을 올리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장생탄광을 처음 방문했다는 하기코엔고의 유스케(17)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희생당한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져몄다"며 "묵념할 때 그분들의 유골이라도 조속히 발견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시기를 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은 바닷가로 이동해 함께 추도사를 낭독하고 다시 묵념을 올렸다. 이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애도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꽃을 바다로 띄워 보냈다.

남성여고 학생 이지아(19)는 추도사에서 "83년 전 해저 갱도 붕괴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한 183명의 희생을 오늘 우리가 잊지 않으려 한다"며 "희생자들의 유골이 하루빨리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 영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간절히 기원했다.

19일,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비에르고와 하기코엔고 학생들과 함께 장생탄광 수몰사고 현장 앞 바닷가에서 추도식을 올린후 꽃을 바다에 띄우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히스토리D 제공)

하기코엔고의 학생인 하루 아(17)는 "뉴스에서 장생탄광 희생자 유골 발견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며 "사고 당시 구조가 늦어져서 희생자가 많았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웠는데, 그 현장에 와보니 그 참혹함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골 발굴 작업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신원 미확인 문제와 발굴 작업의 안전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지난 8월 이곳에서 허벅지 뼈, 팔뼈, 머리뼈 등 인골이 발견된 후에는 다소 바뀐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신철 이사는 "인골이 발견됐다는 NHK 보도 이후 일본 정부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한국 정부 역시 발굴 작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더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일,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비에르고와 하기코엔고 학생들과 함께 장생탄광 수몰사고 현장 앞 바닷가에서 추도식을 올렸다. 헌화한 꽃이 바다 위에 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장생탄광 탐사를 마친 학생들은 사비에르고로 이동, 이틀간 함께했던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이어서 하기코엔고로 이동해 이 학교 학생들과 함께 홈스테이 체험에 들어갔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박한민 연구위원은 "한국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의 가정에서 하루를 지내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남성여고 학생들은 20일 하기코엔고를 방문해 일본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