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종명 회복의 주역…조계종 종정 만암 스님의 재조명

[신간] '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근대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다'

'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근대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다'는 1954년 조계종 초대 종정에 오른 만암종헌의 생애와 평화적·자주적 정화 구상을 사료로 되짚는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근대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다'는 1954년 조계종 초대 종정에 오른 만암종헌의 생애와 평화적·자주적 정화 구상을 사료로 되짚는다. 이재형은 은사 취운도진의 행적과 반선반농, 교육·포교 활동을 함께 복원했다.

만암 스님이 내세운 정화의 핵심은 상대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았다. 결혼했더라도 불사와 전법에 힘쓴 승려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청정승가의 질서를 회복하는 점진적 방안을 구상했다. 비구는 수행을 맡는 정법중과 포교·행정을 맡는 호법중으로 나눠 역할을 맡기는 구상이었다.

해방 뒤 정화 필요성을 처음 공론화한 만암 스님은 1954년 6월 종헌 개정으로 '조계종' 종명을 되찾고 도의국사를 종조로 명문화했다. 회복된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추대됐지만, 국가권력의 개입과 종조 변경에 반대하며 종정에서 물러났다. 말년에는 "화쟁의 문호"와 "화동의 길"을 호소했다.

평전은 사료 대조를 바탕으로 만암 스님의 은사 취운도진 스님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복원한다. 1935년 만암 스님이 백양사 부도전에 세운 '취운선사사은지탑' 비문을 1차 사료로 삼아, 나주 출생 뒤 백양사에 들어가 한양용주 스님을 16년간 시봉한 이력을 밝힌다. 고불총림이라는 이름의 연원도 이 계보에서 찾는다.

반선반농의 시작 시점도 다시 짚는다. 기존에는 학명 스님의 1923년 내장사, 용성 스님의 1927년 화과원이 선농일치의 선구 사례로 거론됐지만, 만암 스님은 1917년 백양사 중창 때부터 반선반농을 실천했다. 연간 양곡 40석에 그치던 백양사는 10년 만에 800여 석을 생산했다.

교육 활동은 1909년 백양사 청류암에 세운 광성의숙에서 출발한다. 만암 스님은 1928년 불교전수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한 학교의 초대 교장을 맡았다. 해방 직후 한글강습회를 열어 36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뒤에는 5대 본산을 연합해 정광학원을 설립했다.

활동 무대는 승가 안에 머물지 않았다. 백양사 포교소를 마을 단위로 운영하고, 제주에 26개 포교소를 세워 제주불교 복원에 나섰다. 일상 의례를 통해 재가신행의 규범을 세우려 한 행보와 서옹·금타·석산 등 제자들의 활동도 함께 다룬다.

법보신문에서 30여 년간 한국불교의 역사와 사상, 수행과 문화유산을 취재한 이재형은 연재 원고를 대폭 보완해 이 책을 묶었다. 적멸 장면으로 시작해 여든 해의 생애를 거슬러 오르는 수미상관 구조를 택했고, 임제종 운동부터 종명 회복까지의 궤적을 따라간다.

1957년 1월 16일 장성 백양사에서 내린 함박눈을 바라보며 만암 스님이 남긴 마지막 말은 "눈이 많이 내리니 올해는 풍년일 게야"였다. 평전은 이 장면에서 시작해 정화와 교육, 자립과 포교에 걸친 행보를 잇는다. 종단 자율과 내부 갈등을 둘러싼 만암 스님의 선택은 오늘의 한국불교에도 남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 '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근대 한국불교를 다시 세우다'/ 이재형 지음/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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