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부터 떡갈나무 혁명까지…필자 47명 참여한 생태 사전

필자 47명 참여, 기획 3년, 집필 1년
[신간]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불평등과 관계 해체를 함께 바라보는 개념어 75개를 묶었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불평등과 관계 해체를 함께 바라보는 개념어 75개를 묶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의 필자 47명은 제도·정책부터 돌봄과 일상까지 생태 전환의 언어를 넓힌다.

경쟁과 성장, 효율을 설명하는 말이 넘치는 현실에서 이 사전은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다. 고 신승철이 생전에 구상한 사전은 한 사람의 사유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여러 필자의 경험과 실천이 만나는 공동 작업으로 이어졌다.

생태 문제를 자연환경에만 한정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경제와 정치, 기술과 도시, 몸과 마음, 공동체와 일상을 가로지르며 위기를 진단하는 용어에서 관계를 바꾸는 언어로 나아간다. 커먼즈, 탈성장, 정의로운 전환, 탄소세와 도시 농업, 공동체 밥상, 공동 주거, 비거니즘이 한 권 안에서 만난다.

이 사전은 개념의 정의를 확정해 두는 방식보다 개념 사이의 이동을 중시한다. 각 항목은 한글·영문 표기와 짧은 정의, 용어의 기원으로 시작하고 철학적·역사적 계보와 한국 사회의 사례, '함께 읽기'를 잇는다.

공유지부터 정동까지 이어지는 75개 개념어

75개 항목은 가나다순 대신 제1부 '공유지의 지혜', 제2부 '연결망의 지혜', 제3부 '정동의 지혜'로 나뉜다. 공유지를 함께 돌보는 기반에서 출발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살피고, 관계를 변화로 움직이는 힘으로 이어 가는 배열이다.

제1부에는 26개 개념어를 담았다. 첫 항목인 '커먼즈'는 자원과 공간의 소유를 묻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어떻게 함께 사용하고 관리하며 돌볼지를 다룬다. 권범철은 음식 나누기, 쓰레기 처리, 에너지 생산과 이동의 방식에서도 소유와 돌봄의 질서가 바뀔 수 있다고 짚는다.

'공동체 밥상'과 도시 농업, 지역화폐, 적정 기술, 기본소득, 탄소 순환 공동체도 이 부에 배치됐다. '생태 시민', '생태 민주주의', '자연의 권리 소송', '탈성장'은 생태 문제를 시민성·제도·법의 문제로 넓혀 본다.

김현우가 쓴 '정의로운 전환'은 개념 자체가 현실의 다양한 사례를 받아들이며 변화해야 한다는 관점을 다룬다. '탈성장'은 경제성장이나 국내총생산 상승만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삶과 관계의 이유와 방법을 집단적으로 선택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불평등과 관계 해체를 함께 바라보는 개념어 75개를 묶었다.
사람·사물·생명체를 함께 보는 연결망의 관점

제2부 '연결망의 지혜'는 20개 개념어로 관계의 형상과 윤리를 탐색한다. 연결망은 사람 사이의 연대에만 머물지 않고 기술과 사물, 동물과 식물, 토양과 미생물까지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자로 다룬다.

'공동체', '호혜', '공생', '스튜어드십', '공동 생산', '책임=응답 능력', '내부 작용' 등이 여기에 놓인다. 인간이 자연에서 생명의 기반을 받는 만큼 비인간 존재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태 윤리의 논의도 이어진다.

홍승하는 공유지에서 싹튼 지혜가 여러 개념으로 연결되고 정동으로 발현된다고 썼다. 이 관점에서 관계는 이미 존재하는 개체를 사후에 잇는 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는 장이 된다.

'세 가지 생태학', '인류세와 여섯 번째 대멸종', '생명 위기 시대의 파시즘', '생태 치유'는 자연·사회·마음의 생태를 함께 살피는 축을 이룬다. 신승철이 남긴 구상은 펠릭스 가타리 등 생태 사상가의 개념을 한국 사회의 현실과 생활에서 다시 풀어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정동과 생태 슬픔, 작은 변화의 확산

제3부 '정동의 지혜'에는 29개 개념어가 실렸다. 기후위기를 알면서도 행동하기 어려운 이유, 한 번의 만남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공동체의 활력이 생기거나 사라지는 과정을 몸과 감각의 차원에서 살핀다.

김미정은 '정동'을 개인의 감정 상태와 구별해 몸들이 마주치며 변용하는 작용으로 정의한다. '생태 슬픔', '마주침', '에코페미니즘', '횡단성', '미시 정치', '분자 혁명'은 상실과 관계, 변화의 힘을 각기 다른 자리에서 다룬다.

책의 마지막 표제어인 '떡갈나무 혁명'은 다람쥐가 묻어 둔 도토리에서 새순이 나고 숲의 천이가 시작되는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각자의 생활 태도와 욕망에서 시작한 미세한 변화가 연결망을 타고 퍼져 전체를 바꾸는 분자 혁명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정해진 독법보다 개념 사이의 이동을 열어 둔 사전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커먼즈에서 공동체 밥상으로, 생태 슬픔에서 정동과 마주침으로, 탈성장에서 지역 되기와 미래진행형으로 옮겨 가며 독자마다 다른 개념의 경로를 만들 수 있다.

기후 재난 앞의 불안과 무기력, 죄책감을 생각할 때는 '생태 슬픔'과 '생태 치유'가, 녹색 정치와 전환 운동을 고민할 때는 정의로운 전환과 생태 민주주의, 자연의 권리 소송이 연결된다. 공동체 안의 갈등과 거리 조절에는 호혜, 횡단성, 국지적 절대성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집단 집필 프로젝트는 2025년 4월 22일 시작됐다. 연구자와 활동가, 예술가, 교사, 종교인, 시민 등 47명이 참여했고, 읽고 토론하고 쓰고 고치는 과정에는 170여 명의 조합원이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탰다.

△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 권범철 외 46명 지음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불평등과 관계 해체를 함께 바라보는 개념어 75개를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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