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책임은 왜 한 사람에게 쏠리는가 … 보이지 않는 노동 '돌봄'

병원 예약부터 식단·일정 조율까지 … 21명의 삶으로 본 돌봄
[신간]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돌봄을 유지하려고 미리 찾고 판단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기획 노동'으로 부른다.

(평창=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돌봄을 유지하려고 미리 찾고 판단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기획 노동'으로 부른다. 저자 김희경은 맞벌이 부부부터 부모를 돌보는 자녀, 장애아 부모와 장애 당사자까지 21명의 삶을 통해 이 노동이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짚는다.

가족의 일상은 누군가 병원을 예약하고 복지 제도를 찾으며 식단과 일정을 맞추는 과정 위에서 굴러간다. 손으로 하는 가사와 돌봄 뒤에는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고 선택지를 비교하는 정신적 노동이 이어진다. 그러나 결과물이나 임금, 근무 시간이 없는 일은 노동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기획 노동'(cognitive labor)이라 이름 붙인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눈에 띄지만, 돌봄이 끊기지 않도록 삶을 설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랑과 책임으로만 묶여 온 부담을 노동의 언어로 다시 묻는다.

책의 첫 부분은 가사와 돌봄에서 기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핀다. 예측과 정보 탐색, 결정이 반복되는 과정과 그 기회비용을 다루고, '똑같이' 일을 나눠도 큰 기획은 남편에게, 일상의 루틴은 아내에게 남는 성별 격차를 짚는다.

교육과 가사 문제에서 정보를 찾고 가족에게 전달하며 결정을 이끄는 일도 또 다른 부담으로 다룬다. 한 사례에서는 여러 교사를 만난 뒤 학습지 선택을 상의해도 결정을 떠맡는 현실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를 퇴근 뒤 가사와 육아에 더해 머릿속에서 계속되는 '세 번째 근무'로 연결한다.

두 번째 부분은 돌봄이 갑자기 시작된 뒤 한 사람에게 쏠리는 책임을 따라간다. 부모 돌봄에서는 병원과 제도, 생활을 함께 조율해야 하고, 장애아 부모는 치료와 교육의 길을 스스로 찾으며 결정을 반복한다. 장애 당사자도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신체 특성을 타인에게 전달하며 삶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기획한다.

가난과 돌봄의 관계도 비중 있게 다룬다. 경제적 여유가 없을수록 선택을 위한 고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담았다. 노인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갑작스럽게 시작될 수 있다는 점도 짚는다.

마지막 부분은 기획 노동을 개인의 능력이나 희생으로만 남기지 않는 방안을 찾는다. 집 안의 일을 '반반'으로 나누는 데서 나아가 기획부터 실행과 마무리까지 함께 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노인 돌봄의 케어 매니저, 공공의 정보 제공 등 개인이 홀로 떠안은 지식을 사회가 나누는 방식도 다룬다.

김희경은 인류학과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동아일보 기자,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여성가족부 차관, 강원대학교 객원교수로 일했다.

△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김희경 지음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