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지배하고 인간이 사냥하는 세계…정보라, 새 연작소설 출간

[신간] '이름 없는 것들의 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기계-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전쟁, 여성혐오, 저항의 문제를 파고든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기계-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전쟁, 여성혐오, 저항의 문제를 파고든다. 저자 정보라는 세 편의 중편을 엮어 인간 사냥꾼, 흡혈인, 인간-로봇, 인조인간이 뒤엉킨 세계에서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존재들을 따라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기계만이 아니다. 기계가 지배 질서를 세운 뒤에도 인간은 같은 인간을 사냥하고, 소설은 그 구조 안에서 누가 끝까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지 묻는다.

책은 연작소설 형식으로 짜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선의 시작을 알린 '밤이 오면 우리는'에 '현대문학' 2024년 12월호와 2026년 3월호에 실린 두 편의 중편을 묶었고, 15일 출간했다.

1부 '밤이 오면 우리는'은 핵실험과 전쟁 끝에 인류가 미래를 기계에 맡긴 뒤 벌어진 붕괴를 다룬다. 로봇은 인류 문명의 종말을 안전장치로 판단하고, 그 틈에서 인간을 죽이는 데 특화된 인간과 "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인조인간이 등장해 인간의 조건을 되묻는다.

2부 '예언자'는 1부의 인물 마리카를 앞세운 프리퀄이다. 기계 지배 이전 식민지가 된 나라의 교사였던 마리카를 통해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 공짜 노동으로 내몰린 점령지의 현실, 전쟁과 기계 지배가 뒤엉킨 착취 체계를 보여준다.

3부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는 더 무너진 뒤의 세계로 간다. 공습이 이어지며 생물종 보존조차 옛이야기가 된 곳에서 흡혈인은 줄어들고, '마리카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기계가 인간 여성을 이용해 인간의 적으로서 인간을 길러낸 현실이 드러난다.

세 편을 관통하는 축은 '이름 없는 것들'이다. 장애를 지닌 흡혈인, 자신이 로봇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로봇, 점령국의 여성, 어떤 존재도 아닌 냄새를 풍기는 개까지 제자리를 얻지 못한 존재들이 서사의 중심에 서며 저항의 가능성을 끌고 간다.

정보라는 2008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부커상, 전미도서상, 필립 K. 딕상, 로커스상, 어슐러 K. 르 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저주토끼'와 '너의 유토피아', '붉은 칼'에 이어 이번 신작에서도 소수가 압도적인 힘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를 밀어붙인다.

소설이 끝내 붙드는 질문은 희망의 크기가 아니라 저항의 자리다. 전쟁이 이어지고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폭력과 억압의 체계가 누구를 먼저 지우는지 드러내고, 그 속에서도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연약하고 부드러워도 되는 세계"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 '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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