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초심지 가위…월지 유물로 푸는 신라 왕실의 빛

1975년 월지 발굴에서 2024년 분석까지, 금동 가위 추적
[신간] '금동 초심지 가위'

'금동 초심지 가위'는 월지에서 나온 금동 가위와 일본 쇼소인 유물을 함께 따라가며 통일신라 왕실 문화와 한일 교류의 흔적을 추적한다. 저자 이현태는 양봉과 초 제작, 출토 위치, 최근 분석 결과를 겹쳐 보며 이 유물이 왜 '초심지 가위'인지와 월지 서쪽 건물의 성격까지 짚는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금동 초심지 가위'는 월지에서 나온 금동 가위와 일본 쇼소인 유물을 함께 따라가며 통일신라 왕실 문화와 한일 교류의 흔적을 추적한다. 저자 이현태는 양봉과 초 제작, 출토 위치, 최근 분석 결과를 겹쳐 보며 이 유물이 왜 '초심지 가위'인지와 월지 서쪽 건물의 성격까지 짚는다.

손잡이가 안쪽으로 말리고 날 가장자리에 반원형 테두리가 달린 형태는 우리가 아는 가위와 거리가 멀다. 저자는 월지와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에 남은 두 점의 유물을 나란히 세우며 왜 같은 모양의 가위가 왕실 공간에 남았는지를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1975년 월지 발굴 때 나온 금동 가위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었다. 쇼소인에도 같은 형태의 가위가 있었지만 그쪽 역시 쓰임을 몰랐고, 가위를 '초심지 가위'로 읽어내는 해석이 나오면서 오랫동안 남아 있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가윗날 가장자리의 반원형 테두리와 약 4센티미터 길이의 날은 이 가위가 작은 대상물을 잘라도 밖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만든 도구임을 보여준다. 책은 이런 구조를 실마리로 삼아 초심지를 자르는 기능을 추론하고, 쇼소인 유물의 날 부분에 붙었던 금속구 복원 과정까지 따라간다.

이 추적은 초와 촛대, 양봉 기록으로 넓어진다. 752년 일본 왕실과 귀족이 신라 꿀을 사기 위해 매입 허가 신청 문서를 제출한 기록, 쇼소인에 남은 납밀, 월지 일대에서 쏟아진 등잔과 달리 한 점만 확인된 초심지 가위는 초가 왕실이나 최상류층의 물건이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가위가 나온 월지 서쪽 2호 건물의 성격도 다시 묻는다. 태자가 머물던 공간이라는 통설과 달리 2018년 보완 발굴 조사에서 왕만이 지날 수 있는 답도와 중앙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은 구조가 확인되면서, 이 일대 건물군을 새로 읽을 여지가 생겼다고 본다.

월지 초심지 가위 앞면을 가득 채운 넝쿨무늬와 작은 원무늬, 쇼소인 가위와의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2024년 국립경주박물관이 진행한 X선 형광 분석과 현미경 분석 결과를 엮어 발견 당시부터 논란이 된 군청색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짚은 대목도 포함했다.

저자 이현태는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을 거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월지관과 월지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은 전시품 해설서의 형식을 취하지만, 발굴 기록과 문헌, 과학 분석, 현장 조사를 한데 묶어 유물 한 점의 쓰임과 배경을 좁혀 간다.

△ '금동 초심지 가위'/ 이현태 지음/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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