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병 뚜껑에 0.2mm 금구슬…'감은사 사리갖춤'이 보여준 신라의 세공술
[신간] '감은사 사리갖춤'…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감은사 사리갖춤'은 1300여 년 동안 석탑 안에 봉인됐던 유물을 따라가며 신라 금속 공예의 정점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짚는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인 이 책은 문무대왕과 감은사 창건, 사리 신앙, 유물의 구조와 발견 과정을 엮어 이 작은 공예품에 응축된 기술과 신앙의 배경을 함께 보여준다.
사리병 뚜껑의 연꽃 장식과 금제 풍탁, 사천왕상처럼 맨눈으로는 식별조차 쉽지 않은 요소들이 이어지며 감은사 사리갖춤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단조와 주조, 투조, 누금기법이 한데 모인 공예의 집약체였음을 드러낸다. 본문 첫머리부터 유물의 세부를 앞세워 신라 장인들이 어디까지 손기술을 밀어붙였는지 묻는다.
감은사라는 절 이름에 담긴 뜻과 문무대왕, 신문왕 부자의 서사가 책의 출발점이다. 동해를 바라보는 절과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유언, 만파식적 설화와 금당 전설이 겹치면서 감은사 사리갖춤은 공예품이면서도 호국 신앙의 산물이라는 성격을 얻는다. 책은 유물만 떼어놓지 않고 그 유물이 놓였던 바다와 탑, 왕실의 기억을 함께 묶는다.
사리와 사리 신앙, 불탑의 구조를 설명하는 대목도 이 책의 주요한 축이다. 찰주공과 사리공을 하나로 연결해 사리갖춤을 봉안한 사례가 감은사 석탑에만 남아 있다는 점을 짚으며, 왜 이 유물이 탑 속 깊이 감춰졌는지 구조와 의례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탑의 층수가 3층으로 바뀐 배경처럼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지점도 함께 제시한다.
책이 가장 오래 머무는 대목은 세밀한 제작 기술이다. 1센티미터 남짓한 사리병 뚜껑 위에 0.2밀리미터 금구슬이 이어지고, 쌀알보다 작은 풍탁에 다시 누금 장식이 더해진다. 서탑 사리함의 다문천왕상이 들고 있는 작은 탑 안에 또 다른 불상이 자리한 모습까지 따라가며, 맨눈으로는 지나치기 쉬운 부분을 확대해 보여준다.
이 정교함은 단순한 솜씨 자랑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완성과 동시에 석탑 내부에 봉인돼 당시 사람들조차 볼 수 없었던 물건이라는 점에서, 이 유물은 누군가의 감상을 위한 공예품이 아니라 초월자를 향한 신앙의 산물로 읽힌다. 보이지 않는 곳에 최고의 기술을 쏟아부은 이유를 묻는 대목이 책의 중심 문제의식이 된다.
감은사 사리갖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계기도 함께 정리한다. 1959년과 1996년 석탑 복원 과정에서 동서 두 탑의 사리갖춤이 확인됐고, 책은 그 발견 경위를 따라가며 1300년 긴 잠에서 깨어난 유물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 설명한다. 탑이 세워진 때와 발견 당시를 잇는 시간의 간극이 책 전반의 긴장을 만든다.
후반부에서는 저자 한정호의 연구 이력도 짧게 붙는다.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고대 불교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전·현직 학예사와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의 한 권이라는 점도 이 책의 자리매김을 보여준다.
△ '감은사 사리갖춤'/ 한정호 지음/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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