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김밥부터 우메소면까지…소설가 한은형의 느긋한 음식 탐닉기
[신간] '먹는 기쁨에 대하여'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소설가 한은형이 제철 음식과 슬로푸드, 소울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코스 요리처럼 펼쳐 보이는 산문집 '먹는 기쁨에 대하여'를 펴냈다.
책은 시즌, 소울, 슬로우, 스토리 등 네 갈래로 구분해 제철 음식, 영혼의 음식, 천천히 완성되는 음식, 한 그릇으로 멀리까지 가는 음식 이야기가 53편의 글로 이어진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먹는 일이란 단순하지 않다"며 "자신을 만든 살과 피, 머리카락은 물론 지금 쓰려는 이야기들까지 먹은 것들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육체적인 줄만 알았던 음식이 놀랄 만큼 정신적인 것임을 자주 느낀다는 고백은 책 전체의 밑바탕이 된다.
1부 '시즌'(Season)은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음식들로 시작한다. 봄나물과 김밥, 자두와 복숭아, 수박과 꽁치, 토란국과 찐빵, 귤과 팥죽까지 계절의 결을 입은 음식이 줄지어 나온다. 어느 날 문득 "씀바귀김밥이 먹고 싶다"는 계시를 받고 끝내 만들어 먹고야 마는 장면이나, 처음 끓인 토란국의 맛을 "고아하다"고 적는 대목은 이 책의 미각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보여준다.
2부 '소울'(Soul)은 추억과 정체성 쪽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계란밥, 치킨, 냉면, 오리우동, 우메소면, 굴과 스키야키 같은 음식이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문제로 옮겨간다. 우메소면을 먹으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고 적는 문장은 맛을 설명하면서도 작은 영원 같은 시간을 함께 길어 올린다.
3부 '슬로우'(Slow)는 발효와 장, 담금술, 사찰음식, 천천히 익는 조리의 감각을 따라간다. 죽은 왜 '한다'보다 '쑨다'가 자연스러운지 묻고, 그 말 안에 곡식과 씨앗의 시간, 만만치 않은 노동의 뜻이 스며 있다고 읽는다. 느림은 이 책에서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사물과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4부 '스토리'(Story)에 이르면 음식은 더 멀리 나아간다. 참새의 혀와 크레이프, 햄버거집과 토마토파스타, 간짜장과 살라미, 꿀과 술 같은 소재를 따라가며 이야기는 타인의 삶과 예술, 낯선 세계로 번져간다. 저자에게 음식은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입구이며, 상상을 불러오고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아이가 되게 하는 매개다.
한은형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2015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레이디 맥도날드', '거짓말',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경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을 썼고, 산문집 '밤은 부드러워, 마셔', '도 초록' 등으로도 독자를 만나왔다.
'먹는 기쁨에 대하여'는 고작 음식 이야기냐는 물음에 조용히 반대하는 책이다. 가장 사소한 일이 때로는 삶 전체가 되고, 혀끝의 감각이 마음과 기억, 세계의 상상으로 번져간다는 사실을 한은형은 집요하고도 다정하게 보여준다.
△ 먹는 기쁨에 대하여/ 한은형 지음/ 인플루엔셜/ 1만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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