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꼬집'보다 넉넉한 '자밤'이 알려주는 한식의 맛
[신간] '자밤의 미학'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음식인문학자 강현영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초빙교수가 표준국어대사전 단위명사인 '자밤'을 열쇠로 한식의 미학과 삶의 감각을 풀어낸 신간을 펴냈다. 신간 '자밤의 미학'은 궁중음식·고조리서·과학·공간을 가로지르며 K-푸드와 집밥의 결을 하나로 묶어냈다.
책은 '세 손가락'에서 출발한다. 엄지·검지·중지를 둥글게 모아 식재료를 그러쥐는 감각을 '자밤'으로 부른다. 비슷한 말인 '꼬집'과 대비시키며, 차갑고 신경질적인 뉘앙스 대신 모성과 자비가 배인 집밥의 결을 전면에 둔다.
1부는 K-푸드의 지혜와 미학을 음식으로 펼친다. 궁중만두는 '자연의 재료와 인간의 정성이 빚어낸 예술'로, 란(卵)은 '사람의 손끝에서만 탄생하는 시간의 예술'로 탈바꿈한다. 밤·대추·생강에 꿀과 계피를 발라 알처럼 반죽하는 디저트 란을 예로 들며, 기계로 찍어낼 수 없는 손끝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어 섭산적·개성주악·증편·북어 보푸라기·도토리묵이 등장한다. 섭산적은 '기다림과 배려의 결정체'로, 증편은 발효의 맛·향에 보존성과 건강까지 고려한 복합 예술로 배치한다. 한입에 터지는 감칠맛, 끈끈한 젤리 같은 질감 같은 표현으로 식감의 언어를 끌어올린다.
2부는 고조리서에 담긴 미학을 따라간다. 콩나물은 부족한 비타민을 채워주는 생명수 같은 존재로, 진주면은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낸 미식의 반란으로 부른다. 오이 국수·생들기름 같은 항목을 통해, 구하기 쉬운 재료 하나도 더 귀하고 더 아름답게 쓰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3부는 과학의 미학으로 방향을 튼다. 계영배(戒盈杯)는 70%만 채워야 마실 수 있는 절제의 잔으로, 접시 색깔은 식탁 위 선택을 바꾸는 장치로 다룬다. 설탕과 소금·감자튀김과 케첩·제로 슈거·숙취·토마토 주스가 이어지며, 기다림·마침표·근사·해장의 철학 같은 언어로 일상 속 원리를 붙잡는다.
4부는 공간의 미학을 펼친다. 건축·해방촌·창덕궁·서울·버거 로드·편의점이 차례로 등장해, 한식이 놓이는 장소의 풍경을 입체로 만든다. 에필로그는 접시가 아닌 사람의 마음속에 한식 인문학을 차려내고 싶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 강현영은 먹방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한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기획 연재에서 '도곡동 강쌤'으로 대중과 소통했고, 한식해설사·궁중음식체험지도사로 쌓은 현장 경험을 책에 녹였다.
독자를 붙드는 핵심은 분량의 감각이다. 딱 떨어지는 계량이 아니라 손끝이 기억하는 무게·질감을 '자밤'으로 불러낸다. 부엌에서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사전 속에 박제된 사어가 된다는 경고는, 한 끼를 대하는 태도와 관계를 다루는 방식까지 함께 묻는다.
△ 자밤의 미학/ 강현영 지음/ 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 1만 8000원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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