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의 절반부터 시작합니다"…숲속 전원주택에서 열린 남편 경매
[신간] '내 남편을 팝니다'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고요한이 남편 매매를 둘러싼 비밀 경매를 소재로 사랑과 욕망의 얼굴을 그려낸 '내 남편을 팝니다'를 펴냈다.
'내 남편을 팝니다'는 숲속 전원주택에서 벌어지는 입찰 전쟁과 총성, 그 이후를 따라가며 블랙유머로 부부의 세계를 들춰 본다.
첫 장면은 '남 주기 아깝지만'이라는 이름의 비밀 사이트에서 열린다. 이혼을 앞둔 해리는 백화점에서 얻은 검은 명함을 단서로 멤버십 페이지를 열고, 남편 마틴의 사진을 올려 경매를 준비한다.
"당신을 팔려고." "그래 팔아라. 이왕이면 아주 비싸게 팔아라." 두 사람의 대화가 코믹하면서도 잔혹한 게임의 시작을 선언한다.
해리는 왜 남편을 팔게 된 계기는 경제문제였다. 결혼 10년 동안 살림을 도맡아 온 마틴은 '살림남'이지만, 투기 사기로 집 마련 자금을 날린 실패로 관계는 벼랑 끝에 섰다. 위자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해리는 '본전'을 찾기 위한 경매를 택한다.
초반부는 해리와 마틴의 균열과 경매 설계를 촘촘히 쌓는다. 해리는 '상품 설명'을 쓰듯 마틴의 장점을 목록화하고, 마틴은 팔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흔들리는 마음을 독백처럼 토해낸다.
굵어진 팔뚝의 이유가 헬스장이 아니라 반복되는 집안일이었다는 사실은 인물의 사실감을 더한다.
경매가 시작되면 카미유와 압구정이 양 축을 이룬다. 조각가 남편을 잃은 카미유는 감자꽃을 좋아하던 고인의 빈자리를 '닮은 얼굴' 마틴으로 메우려 하고, 일흔 살 압구정은 요양과 동반자를 겸한 '연하의 생기'를 찾는다.
여기에 루비통과 천설화가 변주를 맡는다. 첫사랑을 떠나보낸 기억을 지닌 루비통은 마틴에게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본다. 전세보증금을 빼 입찰에 재도전할 각오를 다지며, 감자 캐기 실력과 생활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연변 출신 도우미 천설화의 시선은 경매장의 흥분을 가사·노동의 일상으로 끌어내린다.
경매 호가는 핑퐁처럼 오르내리며 1억에서 2억으로 치솟고, 경매사의 언변이 분위기를 달구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장은 급전하고, 경매장의 규칙은 금세 무력해진다. 뒤이은 장면들은 다시 해리와 마틴으로 돌아와 총성 이후의 선택과 관계의 결말을 묻는다.
저자 고요한은 2022년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으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등 전작에서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길어 올리던 미감이 이번에는 코믹 잔혹극의 형식과 결합한다. 장편·단편·시나리오 감각을 섞은 구성은 상업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겨냥하고, '사랑의 가격'을 둘러싼 금기와 욕망을 정면에서 겨눈다.
△ 내 남편을 팝니다/ 고요한 지음/ 나무옆의자/ 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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