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이가 아픈 배에 뜨거운 돌로 지지는 일 없도록"
[신간] '멀리서 온 약속'…완도대우병원 40년사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섬 사람들은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배 위에서 출산하는 일이 없는 날을, 뱀에 물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죽는 일이 없는 날을, 아이들이 아픈 배에 뜨거운 돌을 올려서 지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날을…이 믿음이 완도대우병원 40년의 밑거름이었다.
대우재단이 '낙도오지 의료사업'으로 세운 완도대우병원의 40여 년을 책으로 묶었다. '멀리서 온 약속'은 섬사람·의료진·지역사회의 시간이 어떻게 병원을 만들고 또 다른 치유의 공간으로 확장됐는지, 약속의 전 과정을 복원한다.
책장을 펼치면 1978년 완도군 노화도에서 시작된 '멀리서 온 약속'을 되짚는다. 기일과 상을 맞댄 12월 9일, 김우중 의료인상 시상식과 같은 날 출간해 약속의 시작과 현재를 잇는다.
1부는 왜 섬에 병원이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기업 중역들이 '의료 공백'을 보고서로 확인하고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던 회의실의 정적, '도서오지 의료사업'으로 수렴한 결정, 그리고 배가 자재를 실어 나르며 바다를 메워 용지를 마련하던 풍경까지 단계별로 복원한다.
2부는 건립과 운영, 그리고 관계 맺기의 기술을 기록한다. 태풍과 지반 공사, '이방인'으로 보이던 병원이 신뢰를 얻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인술이 의술을 넘어섰던 현장을 서사로 담았다. 환자를 '그냥 환자'가 아니라 함께 땀 흘리는 이웃으로 대했던 의료진의 태도가 바뀜을 이끌었다.
3부는 장학사업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최초 110명에서 시작된 지원은 '돌아오지 않는 약속'일지라도 다리의 역할만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섬을 살리려면 공부한 사람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다시 섬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믿음이 뿌리를 내렸다.
책의 맥락은 분명하다. 1970년대 가난과 의료 사각지대, 배 위에서의 출산과 만성질환의 방치, 뱀에 물려 목숨을 잃던 일상이 '접근성' 개선으로 바뀌었다. 병원은 의료를 넘어 청년의 이탈을 막는 지역 자립의 조건으로 기능했다. 팔자라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접근성과 시스템의 문제였음을, 기록은 수치와 증언으로 보여준다.
'대우재단'은 1978년 '사람이 미래다'라는 믿음으로 설립된 비영리재단이다. 이후 재단은 국가·시장에 비어 있는 공익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낙도 병원 건립, 젊은 연구자 첫 책 지원, 예술 실험의 공간 지키기…에 천착해 왔다. '멀리서 온 약속'은 재단 40여 년의 의료 기록을 공동체의 언어로 재배열한다.
△ 멀리서 온 약속/ 대우재단 지음/ 북스코프/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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