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의 심장, 김정은의 '개인 금고'를 열다

[신간]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신간]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류현우가 김정은의 사적 비자금 '36국' 실체를 증언했다. 신간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는 폐쇄된 권력의 금고, 돈의 흐름이 보여주는 북한 권력의 맨얼굴을 추적한다.

저자는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전직 외교관이다. 그의 장인은 김정일·김정은 시대 노동당 39호실을 이끈 전일춘. 책은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증언, 그리고 17년간 장인 집에서 경험한 '권력의 실내 풍경'을 통해 권력의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세탁되고, 쓰이는지를 복원한다.

검은 회계의 핵심은 국무위원회 36국

핵심은 국무위원회 36국이다. 저자는 "36국은 김정은 개인의 사적 금고"라고 단언한다. 노동당 39호실이 국가 명의의 '당 자금'을 다룬다면, 36국은 '혁명 자금', 즉 김정은 개인 비자금을 관리한다. 이른바 '두 지갑 체제'다.

둘 다 김정은의 지배 아래 있으나 회계와 사용처, 관리 체계는 완전히 다르다. 39호실은 무역·자원·노동 수출 등 공식 외화벌이를 총괄하지만, 36국은 방탄 차량·사치품·요트·제비집·고급 시계·남방 과일 등 김씨 일가의 생활을 직접 유지하는 데 쓰인다.

저자는 "수령의 금고는 어떤 기관도 감사할 수 없는 성역"이라고 단언한다. 36국의 작동 구조는 '조달–집행–보위'의 3중 회계로 구조다.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전 동선 점검이나 해외 시설 건설 자재 구입도 이 라인을 거친다. 본부서기실은 대통령비서실이 아니라 '수령 개인비서실'이자 '그림자 재무부'라는 설명이다.

36국은 '검은 회계'에 해당하며 이 흐름은 결국 국제 제재와 핵 개발 자금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핵과 미사일은 김정은의 개인 금고와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핵·미사일 실험을 위한 재원은 36국의 자금 네트워크와 국제 우회 거래망을 통해 마련하며, 그 과정에서 수십 개의 외화 계좌와 페이퍼컴퍼니가 동원된다.

저자는 이를 '혁명 자금의 순환 구조'라 부른다. 한쪽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다른 쪽에서 세탁되고, 다시 김정은 개인의 '통치 자금'으로 환원된다.

[신간]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핵보유국의 꿈을 향한 북한 외교와 자금 조달

책의 전반부 '핵보유국의 꿈'은 북한 외교와 자금 조달의 구체적 실태를 담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북·미 회담 중재를 제안한 비화, 인광석 20만 t 거래, 하마스 무기 운반, 암호화폐 탈취, IS 납치 협상 등 중동 현장 외교의 '은밀한 돈길'이 펼쳐진다.

"두바이에서 활동하던 북한 해커 전사 19명이 암호화폐 탈취 작전에 투입됐다"는 대목은 국제 금융 제재의 빈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북한 외교는 외화벌이이자 생존 비즈니스"라고 적는다.

'백두혈통' 편은 김씨 일가 내부의 권력과 자금, 피의 연대를 집중 조명한다. 김여정 결혼식, 김정철의 향락 생활,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봉화병원 의료진의 특권, 김일성 손주들의 생활 풍경까지 증언으로 엮었다.

특히 서기실 내부 직제와 '영도전화기' 체계는 통치 구조의 비밀을 보여준다. "김정은의 전화기는 번호를 알고 있어도 함부로 걸 수 없는 절대선"이라는 말처럼, 북한 권력은 보안·비밀·직보의 3축으로 움직인다.

서기실의 6처·36과·81과는 서기실장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으며, 오직 김정은에게 직통한다. 이 내부 보고망이 바로 '보위 체계의 심장'이다.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장성택 숙청과 김정남 암살의 실체다. 저자는 장성택이 '김씨 혈통 밖의 장씨'였다는 이유로 숙청이 예고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김정은은 장성택의 오만이 수령 권위에 도전했다며 '총알도 아깝다'고 했다"고 전했다. 숙청 후 3000명 이상이 처형·수용소 이송·좌천됐고, 서기비서와 가족들이 연쇄 자살하는 참상이 이어졌다.

김정남 암살은 '스탠딩 오더', 즉 '집행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이었다. VX 살포, 암살조 동선, 도주 경로까지 '정찰총국 시나리오'로 재구성된다. "김정은에게 김정남은 대체 가능한 유일한 위협이었고, 제거는 예정된 절차였다."

이 책의 신뢰도는 저자의 접근방식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장인 전일춘 가문의 기록, 서기실 내부 보고 체계, 전화망, 결재 도식 등을 통해 비공식 회계의 윤곽을 구체화했다. 특히 36국이 유람선 '무지개호', 문수물놀이장, 능라곱등어관 등 사치시설 자금 집행까지 맡았다는 증언은 '혁명 자금'이 단순한 사적 향락비가 아니라 권력의 상징 자산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 '나의 이야기'는 저자의 탈북기이자 고백이다. 그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탈북민들의 용기를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힌다.

△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류현우 지음/ 동아일보사/ 2만 3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