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망명에 나선 한 여성의 치유 여정"…'독일 도서상' 수상작

[신간] '푸른 여자'

푸른 여자 (PADO북스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2021년 '독일 도서상'(Deutscher Buchpreis)을 수상하며 평단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은 안티에 라비크 슈트루벨의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1990년대 이후 독일이 외면한 '미텔오이로파'(중유럽) 국가들의 복잡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이 소설은 성폭력으로 인해 '내면의 망명' 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위태로운 여정을 정교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좇는다. 동시에 개인의 상처가 동시대 유럽의 지정학적 균열 속에서 어떻게 발화되고 침묵되는지 집요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사라진 목소리와 지워진 존재를 찾아가는 주인공은 체코 출신 아디나다. 독일에서 인턴십을 하던 중 유력 인사에게 폭력을 당한 그녀는,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스스로를 지운 채 핀란드 헬싱키로 도망친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잃은 채 과거에 갇힌 아디나의 고독한 여정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의 백미는 '푸른 여자'의 신비로운 이야기와 아디나의 현실이 예고 없이 교차하는 독특한 서사 구조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푸른 여자'는 아디나가 겪은 고통의 기억 그 자체이자, 차마 내뱉지 못하는 목소리를 대신하는 또 다른 자아다.

작가는 이 신화적 장치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본질을 완벽하게 형상화한다. 독자는 두 서사를 오가며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고통스럽지만 경이로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이처럼 지극히 내밀한 아디나의 투쟁은 동시대 유럽의 풍경과 섬세하게 조우한다. 동유럽과 서유럽, 남성과 여성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 속에서 그의 개인적인 서사는 더욱 복잡한 결을 띤다.

이 소설은 독일 사회가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며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희망과 실망이 교차할 미래의 북한 이탈 주민들이 겪을 '애잔함'를 미리 체험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 푸른 여자/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 글/ 이지윤 옮김/ PADO북스/ 1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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