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부터 AI까지…임영길 40년 예술 궤적 담았다

[신간] Y씨의 무의식 지형도

[신간] Y씨의 무의식 지형도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현대 미술가 임영길이 40년간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한 'Y씨의 무의식 지형도: 임영길의 시각연대기'를 펴냈다.

저자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25년 현재까지 약 40년간 이어진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며, 개인의 무의식과 한국 사회의 격동을 동시에 담았다.

책은 총 13장으로 짜였다. 그는 온도라는 기준 아래 인간과 동물, 심지어 천사조차 체온의 차이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섭씨 36.5도, 내장 깊숙한 곳에서 토해낸 토사물이 동물로 재탄생하는 장면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함을 요구한다. 작가는 생명과 존재를 평등한 감각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장 '산업 사회의 인체' 연작을 다룬다.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그는 획일화된 인체를 그렸다. 폐쇄된 공간 속 수동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은 억압과 무기력한 삶을 은유한다.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듯, 작품 속 인체는 기계처럼 획일화돼 있다. 관객은 그 시대의 고립과 소외를 체감하게 된다.

3장은 '시멘트에 밀려난 자연의 생명력'을 담았다. 그는 판화를 통해 자연의 힘을 시멘트와 대립시키며, 회화와 판화의 상호작용으로 풍부한 형식을 구축했다.

그는 1990년대에 '문명 비판' 연작과 '폐쇄된 지구 생태계-수족관', '문명의 시간'을 이어가며 파편화된 문명의 이미지를 비판하고 환경 위기를 고발했다.

2000년대 이후 그는 한국 전통의 '벽사와 기복'을 현대적 언어로 변용했다. 아티스트 북을 통해 접힘과 펼침, 서사와 구조 같은 형식을 실험하며 전통 이미지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새로운 문명 건설을 위한 철학적인-4원소' 연작은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했다.

2015년 이후 그는 '한국의 기호 풍경' 연작을 통해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지형을 디지털 이미지로 표현했다.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사유하며, 정보화 사회의 시각언어를 탐색했다. 2018년부터는 '인간, 시간, 장소' 연작을 통해 격자의 틈을 무대로 인간 존재와 사건의 잠재성을 표현했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 지능을 활용한 '무/의식의 정원', '한국의 잡음 풍경' 연작을 발표했다. 그는 AI를 통해 잡음 속에서 이미지가 출현하는 과정을 시각화하며, 예술이 기술을 통해 미래를 예감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임영길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92년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뒤, 1993~2023년 홍익대 판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한국영상미디어협회, 한국북아트협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 Y씨의 무의식 지형도: 임영길의 시각연대기/ 임영길 지음/ 미진사/ 3만 5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