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년만의 인터뷰' 공지영…논란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합니다"

[이기림의 북살롱] 4년 만의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펴낸 공지영
"고정된 이미지가 우릴 불행하게 해…악플 강력히 처벌해야"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집 앞에서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미소짓고 있다.2020.10.2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하동=뉴스1) 이기림 기자 = 욕과 악성댓글(악플)에 시달리던 작가가 있었다. 그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전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를 욕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결국 떠났다. 서울을.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무대가 된 경남 하동군에 터를 잡았다. 앞으로는 섬진강과 지리산이, 뒤로는 매화·대나무숲 등이 있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8월부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내려놨다.

그러나 여전하다. 아직도 그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면 어떤 사람들은 일단 비난하기 바쁘다. 이 비난의 대상은 다름 아닌 33년차 작가 공지영이다. 그런 그가 최근 책을 냈다. 4년 만의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위즈덤하우스)가 그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가 책에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유를 묻기 위해 지난 23일 하동에 있는 자택을 찾았다.

2018년 소설 '해리'를 출간한 이후 처음 언론과 하는 인터뷰라고 말하는 공지영 작가에게 대뜸 물었다. "행복하십니까?" 처음 만난 자리,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음에도 그는 동요치 않고 말한다. "네, 행복해요." 공 작가는 "사람들은 제가 행복하다고 하면 안 믿더라"라며 "최근 영상에서도 '수많이 달린 악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라고 말한 것에 '거짓말 마, 네가 행복할 리 없어'라고 댓글이 달렸더라, 우스웠다"라고 했다.

보통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으면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공지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공 작가는 "제 양심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했다. 이어 "잘못한 것에는 반성하는 마음이 있다는 점, 그리고 종교에 대한 영향이 크다"고 했다.

공 작가는 "이혼해서 불행한 게 아니고, 죽어서, 가난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가진 고정된 이미지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15년이 넘는 기간 연습했다.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 과정을 담은 책이다.

공 작가가 작업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공 작가를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이혼, 그리고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한 논란이다. 그에 대한 욕과 악플은 이런 것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공 작가는 이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정에 굶주렸다고 할까, 아니면 워낙 예민해서 사람과 헤어지는 게 너무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날 자신을 성찰해봤는데, 이렇게 중대한 이별을 많이 겪은 이유는 이별을 힘들어했기 때문"이라며 "빨리 이별해야 했는데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중차대한 이별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후 연습을 거친 그는 가는 사람은 축복해주고, 오는 사람은 될 수 있으면 막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공 작가는 논란의 중심에 서던 '사회 정치적인 입장 표명'은 "이제 글로, 작품으로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농담으로 하는 말이 '나 애국 많이 했으니까, 이젠 젊은 친구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도가니 사건 이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원하는 분이 대통령이 됐으니 원래대로 작가의 삶을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SNS에서 하듯 당면한 과제에 대한 대처방식이 너무 날 것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젊어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고, '고등어'처럼 펄펄 뛰는 게 맞지만, 이젠 은퇴한 노년이 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문제와 어떻게 그것이 얽혀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곰삭은 김치처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말은 이처럼 하지만, 고정된 불행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연습한 작가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를 향한 비난으로 인해 응어리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인 공 작가는 자신을 미워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며 "기도 받고 싶다면 악플을 달아달라"고 했다.

농담했지만, 공 작가는 악플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책을 쓰면서도 악플에 시달리다가 죽은 수많은 어린 연예인들을 생각했다. 공 작가는 "저도 사실 가끔은 두렵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악플 때문에"라며 "저니까 이 정도 버틴 거지, 어린 연예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이들에 쏟아낸 악플 등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 작가가 반려견 '동백이'를 돌보고 있다./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작가가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며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이야기했듯 사회 핵심을, 그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 결국 베스트셀러나 문제작이 되고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면 이혼 이야기, 성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그리고 이번 책에 쓴 이야기들이 결국 이 시대의 첨예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라며 "마침 그게 제 이야기였을 뿐이고, 가만히 있어도 전쟁이 내 위를 지나가니까 참전해 전쟁이야기를 쓴 것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이런 인생 정말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도 쓰고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공 작가는 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며, 따뜻해질 것만 같은 섬진강과 지리산이라는 자연이 감싼 하동에서 세살 반 정도로 추정되는 반려견 '동백이'와 함께 살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중 땡볕이 내리쬐는 곳에 서 있는 당나귀, 그리고 그 위에 실신 상태로 널브러진 동백이를 보게 돼 생긴 인연이다. 이들의 모습을 SNS에 올린 이후 동물보호단체에서 나서서 '동물학대'로 긴급격리조치 및 소유권 이전을 받아냈다. 그렇게 우연히 함께하게 된 동백이는 이젠 공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족이 됐다.

공 작가는 이런 추억이 담긴 하동에서 앞으로의 삶도 보내려 한다. 서울에 있는 짐을 다 가져오기에는 현재 집이 좁아, 박경리문학관 근처에 따로 땅을 마련했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한 게 중학교 1학년 때 '토지' 1부를 읽고 결심한 것이니, 결국 그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곳에 묫자리도 봐놨다. 이미 동백나무가 있는 곳 옆에 성모상을 세워놨고, 화장해서 수목장하라는 말을 자녀에 전했다. 앞으로 그는 그곳에 꽃을 심고, 산책할 예정이다.

공 작가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누가 제게 정신승리 혼자 한다고 악담을 써놨던데, 정신까지 패배하면 어떡하냐"라며 "불행할 이유도, 행복할 이유도 각 1000가지쯤은 되는데,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했다. 이어 "진부하게 '내가 돈 없어서 불행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가을하늘, 바람, 숲에서 나는 향기…모두 공짜이지 않나"라며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마음과, 눈과, 피부와, 코가 있다는 것은 값지고, 이걸 생각하면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