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60년 맞은 소설가 정연희 "고통이 내 버팀목"

[인터뷰]작품집 '바람의 날개' 펴낸 정연희 작가

정연희 소설가(서울문화재단 제공)ⓒ 최성열

(안성=뉴스1) 권영미 기자 = 기독교적인 깨달음과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을 써온 정연희 작가(81)가 올해로 등단 60주년을 맞았다. 1957년 이화여대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뒤 그는 지금껏 장편 30여 권, 단편집 9권, 그 외 다수의 에세이집을 펴냈다. 작품 활동을 한 햇수만으로도 웬만한 중견 작가의 나이다.

이 긴 세월에는 파란만장하고 고통스러운 개인적 불행이 길에 박힌 돌부리처럼 곳곳에 박혀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돌부리에 넘어지며 겪은 고통이 버팀목이었다고 회고한다. 지난달 경기도 안성의 자택인 '삼희동산'에서 만난 정연희 작가는 젊은 날 경험한 고통과 구원, 그리고 삼희동산에서의 삶을 들려줬다.

삼희동산은 작가의 이름과 약 10년전 작고한 남편 김응삼 전(前) AK 코리아 고문의 이름에서 한자씩 가져와 지은 이름이다. 여주인의 힘만으로는 관리가 부족한 듯 3000평 대지는 풀과 나무로 울창했다.

"원래 용인시 기흥에 살았는데 여기를 개발해 집을 지은 분이 글쓰기에 좋을 거라며 연락해 와서 옮겨와 살게 됐어요. 당시는 아주 아름다웠는데 17년이 지나고 나니 나무도 너무 자라 '아마존'처럼 됐어요.”

작가는 봄, 여름, 가을에는 연장통에 한가득 든 호미와 낫, 톱, 전지가위 같은 것을 들고 매일 아침 1~2시간 집안을 돌본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는 할 만했던 그 일이 올해부터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삼희동산에서는 남편과 함께 7년, 그 후 혼자 10년을 보냈다. “여길 한 문학단체서 문학 공간을 만들자고 하는데 그러면 여길 내주게 될 거 같아요." 정 작가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이곳에서 남편과 보낸 7년으로 꼽았다.

그의 문학세계는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순교자 주기철’ 등 기독교적인 깨달음을 담은 작품들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의 권력욕과 지배욕에 망가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종의 '여성주의' 소설도 정연희 작가의 문학세계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등단작이었던 '파류상'은 신을 찾아 방황하는 여인을, '어느 하늘 밑' 등은 야간대학에 다니는 젊은 여성의 생활을 그렸다. 2010년 이후 발표된 9편의 작품을 묶어 등단 60주년 기념으로 최근에 출간한 작품집 ‘바람의 날개’에서도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주요 소재로 다뤄진다. 작품들의 어떤 부분은 거울처럼 작가의 삶을 빼닮았다.

태어나기 석 달 전 장자였던 오빠가 홀연 세상을 떠났고 아들을 바라는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깨며 여자아이인 작가가 태어났다. 집안에 불운을 몰고 온 아이라도 되는 양, 정 작가는 가족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런 친정을 벗어나기 위해 소설가 홍성유(2002년 작고)씨와 결혼했다가 1966년 이혼했다.

일반인은 물론 문인들 사이에서도 이혼은 흔하지 않았기에 작가의 결정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서인지 어느날 시청 앞 개풍빌딩을 지나는데 아주 유명한 시인이 내게 침을 탁 뱉고 지나갔어요.”

1960년대 중반은 이혼녀를 ‘전염병 보균자’처럼 취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받은 엄청난 비난과 모욕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다소 민감한 이야기인데도 작가는 100일이 넘게 이어진 조사와 재판으로 피폐해졌던, 그러나 다시 자신을 태어나게 한 수십 년 전의 구속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1973년에는 간통죄로 구속되었어요. 증거도 없이 40일간 불구속 수사를 당했어요. 매일 나를 조사하는 것은 물론 ‘두 남녀가 어디 가는 거 봤냐’고 증인들을 불러 추궁해대고...그 다음에는 72일간 재판을 했어요.”

작가는 일개 간통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재판의 뒤에 당시 군사정권의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해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었던 바로 얼마 후인 9월 초 자신이 고소당한 데다가 작고한 남편은 이 사건으로 터무니없이 간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이 온전히 불행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일로 인해 작가가 종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모든 생명은 씨가 있는데 씨앗은 캄캄한 데 묻혀 있다가 뚫고 나와서 생명인 빛을 만나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씨눈이 떨어져 나가야 해요. 나는 그 사건으로 내 영혼의 씨눈이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해요. 씨눈이 떨어지면 삶이 달라져요.”

100일 넘게 간통사건을 치른 후 자신은 풀려났지만, 상대인 김응삼씨(남편)는 간통죄에 간첩누명까지 뒤집어쓰고 풀려나지 못했다. “저 불쌍한 이를 살려만 달라”면서 작가가 신에게 울며 매달린 후 그는 사건 1년 만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두 사람은 1975년 결혼했고 그 후 수십 년을 함께 했다.

작가는 자신의 60년 문학 인생이 신앙을 갖기 전인 'BC'(기원전, Before Christ)와 후인 'AD'(기원후, Anno Domini)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신앙을 갖기 전에는 체험도 이념도 없어서 쥐어짜다시피 작품을 썼는데 그 후에는 모든 사물의 이야기가 들려요. 내 속에 꽉 차 있는 것이 내보내달라고 해요. 씨눈이 떨어진 뒤에 인간의 유전인자 속의 서사가 그때 함께 눈을 떴구나 생각해요.”

작가는 얼마 전부터 한 권씩 내고 있는 소설 선집에 BC에 쓴 것은 부끄러워서 넣지 않았다. 또 이 신문 저 신문에서 자신의 등단 60년을 다루는데 슬며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60주년이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되었는데, 여기서 어떤 출발을 해야 하나, 세상 떠날 때까지 어떤 자세로 글을 써야 하나, 내게 과연 그 자세를 지킬 에너지가 남아있나 생각하니 많이 두렵습니다. 그간 나이를 의식할 사이가 없었는데 집을 돌보는 일에 육체적인 한계를 느끼면서 나이를 의식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팔순의 노작가는 ‘바람의 날개’ 외에도 올해 환경생태 수필집 ‘천사의 바구니’를 출간했고 장편소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재출간할 예정이다. “나는 나밖에 독자가 없더라도 글을 쓸 거예요. 평생 이유도 없이 사람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엄청난 오해를 받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내가 글을 쓰고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늙어가는 삶에서 에너지가 되었어요. 삶의 고통이 내게는 버팀목입니다.”

자택에서 독서중인 정연희 작가(서울문화재단 제공)ⓒ 최성열
젊은 시절의 정연희 작가. (서울문화재단 제공)ⓒ 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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