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어둠의 자식'…탄핵정국 울리고 웃긴 '문학적' 표현들

지난 3월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2017.3.1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탄핵인용 되었구나 빨리 가라 순실 곁에

오래도록 못 봤으니 실컷 수다 떨려므나

하늘에는 천심 있고 땅 위에는 민심 있다

장하구나 촛불이여 이게 바로 역사 현장.'

(3월11일 촛불집회에서 낭송한 박춘명의 '박근혜에 고하는 8자시' 중에서)

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과 시청앞 광장의 '탄핵 각하를 위한 태극기집회', 그리고 헌법재판소 재판정은 '정치와 법'의 장소였지만 '문학적' 표현들도 쏟아진 공간이었다.

지난해 11월26일 박근혜정권퇴진 울산시민행동은 '버티기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즉각 퇴진'을 내세우며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열린 울산 시민 3,000여 명과 함께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3차 울산시민대회’를에서 한 학생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학생 및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청소년, 대학생이 함께 참여한 ‘하야체조’ 등을 선보였다. 2016.11.26/뉴스1 ⓒ News1 이윤기 기자

지난달 11일 열린 15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시민발언대에서 '이게 나라냐'며 울분을 토하는 가운데, 딸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는 박춘명씨는 풍자가득하면서도 절제된 '8언절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네 팔자나 국민 팔자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이젠 그만 많이 했다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은근한 설득으로 시작해 그는 박 전대통령이 사랑한 표현인 '대박'을 이용해 퇴진을 촉구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곳곳에서 많은 국민 대한민국 잘 되기를

기본원칙 정정당당 깨끗나라 희망하니

내려오면 대박이고 버티면 쪽박이다

정책들은 서면보고 재벌들은 서면보고

수첩인사 돌려막고 하나같이 허수아비

국정교과 웬말이고 한일협정 웬말이냐

사드배치 최선이니 길라임도 궁금하대.'

박근혜 대통령 법률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삼일절인 지난3월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열린 탄핵 기각 촉구 15차 태극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2017.3.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한국문학사의 '거목'인 김동리 소설가를 아버지로 둔 박근혜 대통령 측 법률대변인인 김평우 변호사는 지난 2월22일 변론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인 '약한 이여, 그대 이름은 여자'를 연상케하는 문학적 발언을 한다. 그는 "(국회 측 대리인단은) 황정근 변호사를 비롯해 다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변호사들이다. 국회도 힘이 넘치는데 약한 사람은 누구냐. 여자 하나(박근혜)"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이후에도 문학적 표현을 이어갔다. 그는 3월1일 태극기집회 연설에서 "여러분, 촛불이란 게 누굽니까. 어둠이 내리면 복면을 쓰고 촛불과 횃불을 들고 나타나 붉은 기를 흔들며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아닙니까"라며 청중들에게 '촛불'에서 '어둠' '복면' '횃불' '어둠의 자식'으로 발전하는 강력한 '메타포'(상징)를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선보였다.

지난 1월25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국정농단사태의 몸통격인 '비선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 25일 최씨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강제소환되던중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며 소리치고 있다. 2017.1.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1월25일 특검에 출석하면서 최순실이 소리친 "여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를 눌러준 것은 '잎사귀 석 장'같은 가벼운 시였다. 일명 '청소아줌마' 임 모씨의 작품인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는 '욕은 약한 자의 칼'이면서도 '궁극의 골계미(풍자와 해학)'를 담은 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월9일 헌재 법정에서 외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의 "대통령은 윗분이고 국민은 하찮나"는 듣는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시였다. 지난해 교육부의 한 인사가 읊었다가 파면당한 '민중은 개돼지'도 휘발유를 끼얹는 듯이 듣는 민중의 가슴을 순식간에 불붙게 했지만, 노 부장의 말은 가슴 깊은 곳에 화력좋고 오래가는 장작불을 지폈다는 평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널리 회자됐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지난 2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1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7.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역사에 남을 가장 강력한 문구라고 할 만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추상같이 날린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13일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항구로 돌아온 배'같은 느낌의 시와 같은 퇴임사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가운데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중반부터 재판장을 맡아 선고까지 이끈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2017.3.1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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