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은 왜 뚫었니, 제본은 왜 안했니"…최근 책 트렌드 보니

2016년 출간된 특이한 형태의 책들

2016년 출간된 특이한 형태의 책들 모음ⓒ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국판, 신국판, 46배판…'.

책은 전지를 몇번 접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포켓용 여행서나 요리책 같은 실용서를 제외하고 그간 성인용 도서는 작아야 예전 교과서 크기나 그보다 약간 큰 정도의 일반단행본 책과 그보다 큰 잡지 크기의 책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핸드백에 쏙 들어갈 정도로 얇고 작아진 인문서가 다수 등장했다. 동시에 한손으로 들기 버거울 정도로 크고 고급스런 호화장정의 책도 나왔다. 또 고리를 달 수 있도록 귀퉁이에 구멍이 뚫린 책이나 약시용 큰글자 책도 나왔다. 불량품인가 싶은 누드제본의 책, 아예 제본을 안한 파격적인 책도 등장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올해 출간된 특이한 형태의 책들을 살펴봤다.

◇소장본은 크고 호화롭게, 보급판은 작고 알차게…'세계서점기행'

'세계서점기행' 보급판(왼쪽)과 소장판ⓒ News1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는 올해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지난 4월 '세계서점기행'을 펴냈다. 김 대표가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의 독립서점 일곱 곳과 미국의 서점 네 곳, 중국의 서점 여섯 곳을 직접 방문해 각국의 정신과 문화 차이를 '책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여주려 한 이 책은 큰 사이즈와 호화장정, 형식에 걸맞은 좋은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8만원이라는 고액의 책값에도 좋은 책을 서가에 꽂아놓고 두고두고 보고싶은 '소장형' 독서가들에게 이 책은 인기를 끌었다.

5달 후인 지난 9월 한길사는 다시 작고 알찬 보급판 '세계서점기행'을 일반 독자들도 부담없이 사서 볼 수 있도록 1만9000원 가격으로 내놓았다.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실속파' 독서가들에게 적합했다. '세계서점기행'은 한가지 콘텐츠인데 형식에 변화를 주어 상반된 독자층을 만족시킨 '일석이조' 전략을 구사한 예다.

'세계서점기행'처럼 가방에 넣어다닐 수는 없지만 대신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소장용 책의 또다른 예는 최근 출간된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들 수 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기인 올해를 약 한 달 남기고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은 국내 최초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38편과 시 6편 총 44편을 완역해 단 한 권에 담았다. 단 한 권에 담기 위해 국배판(255㎜×290㎜)에 1808쪽 양장본, 좌우 2단 편집의 독특한 형식을 갖게 된 이 책은 '영원불멸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가치에 어울리게 크고 무겁다.

셰익스피어전집ⓒ News1

◇음악에는 히트앨범, 책에는 '쏜살문고'

쏜살문고ⓒ News1 박세연 기자

민음사는 이번달 초 세계문학의 고전을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총서인 '쏜살문고'를 발간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340여 권이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나 에세이를 골라 가방에 쏙 들어가는 가벼운 형태에 담았다. 민음사에 따르면 '쏜살 문고'라는 이름은 민음사 로고에 등장하는 '활 쏘는 사람'에서 딴 것으로 '세계를 향해 지식을 쏜다'는 의미다.

이번에 펴낸 책들은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 '키 작은 프리데만 씨'와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산책',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5권을 묶은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등 7권이다. 가장 인상적이고 많이 읽히는 부분을 골라 담아 두꺼운 고전 한권을 독파하는 부담을 덜었다. 200쪽 안쪽의 분량에 5000~7000원이라 가격 면에서도 부담없다.

◇고리 달게 구멍 뚫은 책, 약시자 위한 큰 글자 책

ⓒ News1 박세연 기자

출판사 알마는 최근 한귀퉁이에 구멍을 낸 책 '#혐오_주의'를 펴냈다. #해시태그 시리즈 4권의 첫 권인 이 책에는 왼쪽 위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다. 출판사측은 "'소셜 키워드'(SNS에서 화제가 된 단어)를 통해 사회현상을 읽어보자는 의미의 시리즈"라면서 "해시태그를 사회를 잇고 모으는 연결고리라고 보아서 고리를 걸 수 있는 구멍을 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알마는 지난해 타계한 미국의 뇌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 '고맙습니다'도 최근 '큰활자책'으로 출간했다. 편견과 싸우고 상처받은 인간을 사랑했던 색스의 마지막 인사가 담긴 4편의 에세이를 돋보기의 도움 없이는 독서가 힘든 약시자와 노인층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글자를 키워 출간한 것이다.

◇불량품 아닙니다…'누드제본'에 이어 아예 제본도 안한 '리브르 아 를리에'

'리브로 아를리에' 형태로 제작된 책 '하우스 오브 픽션'(왼쪽)과 일반적 형태의 '하우스 오브 픽션'(가운데 아래). 오른쪽 위는 누드제본된 책 '유럽골목여행'과 '빅보이'(오른쪽 아래)다.ⓒ News1 박세연 기자

지난 6월 출간된 사진 중심의 여행에세이집인 '유럽골목여행'(숲속여우비)과 화가 김태헌이 100점에 가까운 그림작품과 함께 단상들을 함께 수록한 책 '빅보이'(알마)는 끈으로 묶어 제본한 부분이 훤히 드러나 얼핏 불량품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누드제본'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제본이다. 모아진 페이지들을 지탱해주는 딱딱한 부분이 없는 이 누드제본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180도로 활짝 펼쳐지기 때문에 그림을 중시하는 책의 제본에 유리하다. 양장이나 일반책의 제본처럼 페이지 안쪽이 책등 쪽으로 물려들어가지 않아 그림을 시원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 9월에는 '리브르 아 를리에'(Livre a relier)라는, 이름부터 생소한 형태의 책 '하우스 오브 픽션'(스윙밴드)이 출간됐다. '리브르 아 를리에'는 제본하지 않은 상태로 판매하는 책으로, 내용이 인쇄된 내지를 접은 뒤 테두리를 잘라내지 않고 페이지 순서대로 추려놓거나, 혹은 쉽게 뜯어낼 수 있도록 실로 한두번만 꿰어 표지에 끼워놓는 형태다.

'하우스 오브 픽션' 스페셜 에디션은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제본되지 않은 채로 정식 출간된 최초의 '리브르 아 를리에'다. 구매한 독자가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책을 제본하고 소장할 수 있다. 스윙밴드 측은 "제본 직전 인쇄소에서 막 출력된 종이 형태의 책을 독자들도 느껴보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이같은 책을 만든 이유를 밝혔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