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유령이 머리맡에 앉아 열대야를 식혀준다면

[북클럽] 존 켄드릭 뱅스의 소설 '내가 만난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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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방 의자 여섯 개 위에 여섯 개의 빨간 점이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타고 있다. 누군가 들어온 듯한데 등 뒤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다음날 검은색 소파는 하얀 색으로 변해 있다. 어떤 영국 유령은 왕과 귀족의 존재를 옹호하며 한시간 남짓 떠들어댄다.

우리나라에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작가인 존 켄드릭 뱅스(1862~1922)의 소설 '내가 만난 유령'(책읽는귀족)이 최근 출간됐다. 뱅스는 미국 근대 문학계를 대표하는 잡지 편집자이자 논설가, 환상문학가, 유머작가였다. 그는 시에서 소설, 희곡, 아동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수의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초자연적 허구에 재능을 보였다.

이 책에는 뱅스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7편의 유령 이야기들이 담겼다. 유령 이야기이니만큼 음산한 분위기지만, 작가로 설정된 주인공의 엉뚱하고 유쾌한 태도와 행동과 결합되면서 유령 이야기가 무섭기만 할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날려준다.

주인공은 "유령들에게 고통을 받고 시달리는 이 잔악한 운명의 가시밭길 속에서, 유령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면서 "끝끝내 유령들의 존재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보다는 마음 속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품위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자꾸 유령을 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은식기 세트를 훔치기 위해 숨어들었다가 들키자 "아주 오래 전에 세상을 뜬 유령이라오"라고 둘러대는 도둑을 유령으로 착각할 정도로 '허당'이다. 자신이 봐왔던 유령 중 가장 끔찍한 모습의 유령을 보자 주인공은 "머리카락은 맹렬한 기세로 머리 가죽을 잡아당기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그 중 네 가닥은 머리 바로 위 오크나무 천장에 못처럼 딱 붙어버렸다"고 허풍을 떤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본 바대로 충실하게 사회상을 기록한다"고 극구 강조한다.

주인공이 만난 귀신 중 가장 색다른 이는 바로 그의 머리맡에 앉아 열대야를 식혀준 한 귀신이다. '저수지에 그늘 한 점 들지 않아 수도꼭지에서 데일 듯이 뜨거운 물이 흘러나와 사람들이 화상을 입을까 두려워 감히 아침 목욕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록적으로 더운 어느 여름, 밤잠을 못자는 주인공에게 한 귀신이 찾아온다.

귀신은 "당신의 글은 흥미롭진 않지만 우리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열대야에 잠을 못이루는 주인공을 위해 냉기를 내뿜으며 여름 내내 침대 머리맡을 지킨다. 주인공은 그 덕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시까지 몇 편 쓰게 됐고 가을에 일터로 잘 복귀했다는 너스레를 떤다.

푹푹 찌는 여름밤, 열대야를 이길 방법은 냉기 품은 유령을 초청하는 것 아닐까. 유령이 너무 무섭거나 불행히도 초청할 유령이 없다면 으스스하면서도 유쾌한 이 책을 읽는 것도 여름밤을 보낼 좋은 방법일 것이다.(존 켄드릭 뱅스 지음·윤경미 옮김·책읽는귀족·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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