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막히면 돌아가라…'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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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정신과 의사인 밀턴 에릭슨(1901~1980)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심리학계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환자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대화를 나눠서 병을 치료해 유명해졌지만, 그가 최면술을 활용했고 치료법을 이론으로 정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이 그의 치료법을 '간접최면' '에릭슨 최면' '최면상담' 등으로 명명해 사례 위주로 소개하는 정도다.

밀턴 에릭슨의 대화 치료법은 놀라운 효과 때문에 다른 분야로 빠르게 전파됐다. 영업사업의 판매 화술이나 픽업아티스트의 연애기법, 신경언어학 프로그래밍(NLP) 등이 그의 치료법을 응용한 것이다.

'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유노북스)은 밀턴 에릭슨을 소개하고 그의 대화법을 직장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기 좋게 다듬은 책이다. 책에 소개된 몇몇 대화 기법은 약간만 노력해도 금방 습득할 만한 수준이다.

밀턴 에릭슨은 어릴 때부터 장애와 질환을 앓았다. 인지 발달 장애, 난독증, 색맹, 소아마비…. 그런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을 깊이 있게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거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궁금해졌고, 마음의 장벽을 우회해서 본심과 만나는 대화법을 만들었다.

"에릭슨은 “그 장애는 나를 농부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의사의 길을 걷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앞을 가로막는 벽에 저항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걸 이용해 새 길을 뚫는 에릭슨의 사고가 드러나는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며 우회 대화법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우회 대화법은 상대를 잘 파악해 이야기를 받아들일 상태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우회 대화법은 독자가 TV만 틀어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홈쇼핑 진행자는 상품을 사달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상황을 알려서 의미를 전달한다. 그는 "곧 마감이 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10개가 더 팔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10개 남았습니다"고 한다.

저자는 대화의 목적에 따라 상대방에게 시간을 제약하거나 넉넉하게 줘야 한다고 했다. 시간을 빠듯하게 제약하면 좋은 상황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몰아가거나 △길게 대화해봐야 내 단점이 드러나거나 △내가 먼저 상대에게 접근할 때 등이다. 상대방에게 시간을 넉넉하게 줘야 좋은 상황은 △상대방에게서 정보를 얻거나 △상대방과 진실한 인간관계를 추구하거나 △상대방이 고충을 털어놓을 때 등이다.

신뢰 형성은 마음의 장벽을 우회하는 핵심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패턴을 파악해 비슷한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면 신뢰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저자는 상대방의 대화 패턴 2가지를 빠르게 파악할수록 좋다고 조언한다. 하나는 결론부터 말하는 두괄식인지 아니면 미괄식인지 구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지 아니면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모두를 만족하는 대화 공식은 없다"며 밀턴 에릭슨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론이나 공식이 아니라 경청의 지혜라고 했다. 에릭슨이 수많은 정신질환자와 대화하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제대로 된 경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특성을 빠르게 파악해 마음의 장벽을 우회해 진심에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은 경청이 상대에게 집중하는 능동적 행동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한다.(최찬훈 지음·유노북스·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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