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추사는 왜 글씨에 암호를 심었을까

책 '추사코드'…정적의 눈 피해 서화작품에 세도정치 비판·개혁사상 담아

추사 김정희 작품 계산무진(谿山無盡). 계산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뜻.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소장중이다. ⓒ News1

(서울=뉴스1) 이기창 편집위원 =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

조선말의 문신이자 실학자요, 창조적인 추사체로 일가를 이룬 서예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남긴 작품의 하나다. 이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①‘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씨가 완악(둔탁하고 고집스러움)하게 새겨져 있는 돌이 있는 누각’ 또는 ‘고비의 파편을 모아둔 서재’

②‘왕가의 족보를 꿰어 맞춰(殘書) 아둔한 종친(頑石)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시도가 대왕대비의 치맛바람(樓)으로 세 번 만에 성사되었다.’

전자는 추사연구자들의 해석이다. 후자는 화가 이성현의 풀이다. 두 해석의 차이가 천리만리 다. 전자는 너무 평범하다. 반면 후자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파격이 하늘을 찌른다. 전혀 터무니없는 해석이라고?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후자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논리의 설득력이 뛰어나다.

독특한 논증과 추리, 그리고 숱한 고전을 토대로 기존 학계의 시각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있는 이성현은 30년 동안 교육자로 활동해온 추사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펴낸 ‘추사코드’(들녘刊)에서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정치인으로서 추사’의 삶에 주목한다. 김정희의 서화 속에 담긴 의미를 한자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허섭스레기나 다름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대의 석학이기도 한 추사가 그토록 의미 없는 글을 남겼을까? 지은이는 시공을 초월해 추사와의 말없는 대화를 통해 그런 의문을 풀어나간다. 추사가 품고 있던 뜻과 이상, 개혁사상을 글씨 속에서 찾아낸다. ‘잔서완석루’를 왜 그리 해석하는지 근거를 들어보자.

후자의 해석에 등장하는 왕은 강화도령으로 익히 알려진 25대 국왕 철종(1831~1863)이다. ‘잔서완석루’의 뜻풀이로 내세운 전거는 ‘송사(宋史)’와 ‘시경(詩經)’이다. ‘송사’에서 ‘잔서’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옛 자료를 모아 작성한 글’이라고 풀이한다. ‘완악할 頑’은 ‘둔하다’ ‘어리석다’는 의미로 사람의 속성을 일컫는 글자이다. ‘시경’은 바위(岩)나 돌(石)을 천자의 종친이란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즉 ‘완석’이란 ‘아둔하고 고집 센 종친’을 지칭한다.

그래서 글머리의 ②번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지은이는 특히 글자의 모양에 주목한다. 추사가 ‘쓴’, 아니 ‘그린’ 글자의 형태가 한자 고유의 글꼴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 본 것이다. ‘쓰다’ 대신 ‘그리다’라는 동사를 사용한 이면에는 추사가 본의를 숨기기 위해 코드를 글자 속에 심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지은이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추사연구자들이 그의 서예작품을 ‘그림 같은 글씨’라고 평한다.

추사는 書자의 아래 부분에 ‘가로 曰’ 대신 옛글자를 사용하여 ‘사람 者’를 채워 넣었다. 특히 ‘者’의 대각선 획을 세 번에 걸쳐 완성했다. 이는 세 번 만에 왕위 계승권자로 결정됐다는 의미라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石’자는 어떨까.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은 대각선 획이 2번에 걸쳐 이어 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 김씨들이 종친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대비의 치맛바람을 빌려 3번 만에 성사시킨 것을 의미한다는 풀이다. ‘누각 樓’도 마찬가지다. ‘계집 女’부분을 관찰하면, 추사가 3획으로 女자를 그린 뒤 가필을 하여 획을 이어 붙였으니 ‘치마를 휘젓고 있는 계집’이란 뜻을 그려내기 위함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친정식구들에게 권세를 몰아주던 대비의 치맛바람을 ‘樓’자 속에 담아내기 위해 추사는 특별한 모양의 ‘계집 女’자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이성현은 “추사의 인생역정에 비춰볼 때 문장 내용이 너무나 단순하고, 밍밍하고, 때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 앞에서 실망을 넘어 거의 이율배반의 느낌마저 갖게 된다. 추사의 본의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한 의문은 추사가 평생 굽힘없이 개혁을 추구했던 뼛속까지 정치인이었다는 사실로 눈을 돌리게 했고, 그 순간 미지의 풍광이 펼쳐졌다. 이성현은 “추사는 정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작품 하나하나, 작품 속 구석구석까지 번득이는 코드들로 채워놓았다”고 단언한다.

왕실의 내척(內戚)으로 태어난 추사는 개혁의 웅지를 품고 있던, 영민한 효명세자(1809~1830)의 스승이었다. 효명세자는 병약한 순조의 대리청정을 하면서 추사의 도움을 받아 외척들을 한직으로 내치는 등 왕권강화를 통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큰 뜻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4년 만에 각혈로 이승을 하직한다. 추사의 정치적 열망도 좌절된다. 권토중래한 안동 김씨 일족의 정적 1호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탄압을 당한다. 추사의 부친은 물론 자신도 유배를 거듭하게 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谿山無盡(계산무진)’, 추사체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계산이 끝없이 펼쳐짐’이라는 뜻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지은이가 풀어낸 서의(書意)는 무엇일까. 그는 “이 네 글자에는 산속에 은거한 지식인들을 향해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와 맞서 싸우라고 질책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谿자를 파자하면 ‘어찌 해(奚)’와 ‘골 곡(谷)’으로 나눌수 있다. 奚자는 원래 허드렛일을 하는 하위공직자라는 뜻이다. 谷자는 사방에서 계곡을 향해 물이 모여드는 형국으로 그려졌다. ‘老子(노자)’에서는 수많은 계곡과 물을 차별 없이 받아들일 능력이 있기에 강과 바다를 ‘谷王(곡왕)’이라고 부른다. 추사의 산(山)자는 작은 조각배를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사화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권력다툼에 혈안이 되어 백성을 돌보지 않는 조정에 대한 추사의 질타가 담긴 것이 ‘계산’이라면 ‘다할 진(盡)자는 해법을 담고 있다. 추사는 盡자를 속자로 쓰고 있는데, 이는 불 화(灬) 부분을 생략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추사가 그려낸 盡은 세도정치로 피폐해진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시급한 덕치를 역설하고 있다.”

山崇海深 遊天戱海(산숭해심 유천희해)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기존 연구자들은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 하늘을 노닐고 바다를 희롱한다’라는 정도로 뜻풀이를 한다. 지은이는 다르다.

“나라(山)의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이양선의 접근을 막아라(崇). 우리와 다른 세상(海)의 믿음을 전하는 성경말씀(深)에 현혹되는 위태로운 상황을 경계하고 경계하라.”(산숭해심) “예수의 부활과 승천(遊天)이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백성을 현혹시키는 천주교를 허락하라고 조선연안에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이는(戱海) 서양군함의 출현은 계속될 것이다.”(유천희해)

추사는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인물이면서도 그의 삶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성현은 그 베일 속에 감춰진 추사의 삶과 그가 서화에 뿌려놓은 비밀을 밝혀내는 작업의 첫 결실로 ‘추사코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은이의 해석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추사의 삶과 예술을 온전히 복원하는 노력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지은이가 제시한 새로운 시각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이 책은 추사 연구방법의 지평을 넓히는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성현 지음·들녘·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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