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전설'은 부분표절…전작까지 매도해선 안돼"

문단 원로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자신의 페이스북에 견해 밝혀

이시영 작가회의 이사장의 페이스북 캡처 ⓒ News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의도적 베껴쓰기'가 아니라는 창비의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신경숙이 쓴 '전설'의 일부 문장은 의도돠었든 아니든 '부분 표절'이라고 본다. 하지만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 등 전작의 높은 문학적 성취까지 전면 부정해선 안된다."

한국 문단의 원로인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이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이같이 밝혔다. 이와 함께 문단에서 제기되는 '창비의 상업성' 논란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한국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해 지난해 창립 40년주년을 맞은 한국문학의 주요 문인단체다. 이 이사장은 자신의 글에서 우선 신씨의 작품 '표절'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문자적 유사성'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창비의 입장을 부정했다.

그는 신씨의 글의 일부 문장은 그 어떤 '창조적 모방'이나 '차용'도 아니고 의도돠었든 아니든 '부분 표절'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의 높은 문학적 성취가 전면 부정되거나 '파렴치한 도둑질'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다수 문학인들에게 '창비'가 '우리의 창비'가 아니라 편집인을 비롯하여 특정 편집위원들만의 그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정서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자본시장 속의 한 출판기업인 창비에게 '상업성'을 포기하라는 일부 주장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라면서 창비의 상업성에 대한 항간의 비난과는 목소리를 달리했다.

창비가 발간하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최근 가을호에서 백영서 편집주간의 글을 통해 "(창비가 펴낸) 신경숙씨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문자적 유사성은 있지만 의도적 베껴쓰기로 볼 순 없다'는 내용의 입장을 내놓았다. 창비는 표절 논란에 휘말린 신씨 소설 '전설'을 담은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내놓은 대형출판사다.

이어 창비의 최대주주이자 정신적 지주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창작과 비평'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에 문단에서는 백 교수의 입장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다음은 이시영 이사장의 글 전문이다.

최근의 '문학권력' 비판 중에서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김남일의 글이다. "창립 50주년의 창비는, 미안한 얘기지만,백선생의 창비는 아니다. 시작은 백선생이 하셨지만, 오늘 우리 곁에 있는 49살의 창비는 그 세월을 함께 견뎌온 모든 이들의 보람이어야 한다."

이 발언의 행간 속에는, 7,80년대의 군사독재를 '창비'와 함께 겪어온 창비 독자와 작가들의 애정 어린 충정이 담겨 있어서 그만큼 아프고 곡진하다. 창비는 특정인들의 창비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이 기여된 소중한 '문학자산'이다. 최근 백선생의 생각을 경청하기 위해 '창비 라디오'(김두식-황정은 진행) 1-2회분을 들었다. 90분짜리 두 회분인 셈이니 상당히 긴 대담이다. 갑작스런 '은퇴선언'도 있어서 놀랐지만, 나는 그의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직도 열정이 식지 않은 치밀하고 정교한 우리 사회 전반의 변혁 의지에 감동하는 한편, 창비 50년에 대한 '회고' 중 그 어렵던 시절을 함께 견뎌온 '동지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심이 너무 '소략'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아마도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김남일의 표현대로 '창비'는 독자들을 포함하여 거기에 글을 쓴 작가들 그리고 함께 '강제폐간'과 '출판사 등록취소'에 온몸으로 저항해온 모든 이들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나는 세간에서 얘기한 바대로 '백선생만의 창비'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창비가 90년대 후반에 주식회사라는 법인으로 바뀌었고 그 최대 주주는 물론 창간의 주역인 백선생이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군사독재 시절의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우리의 양에 차진 않지만 아직도 창비는 '담론'의 영역에서만큼은 어느 잡지도 감당할 수 없는 독보적이며 진취적인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고 그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자임하고 있다고 본다. '분단체제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 '87년체제론' 등에서 이 잡지가 수행하고 있는 지속적인 작업과 탐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갈리마르'나 '주어캄프'처럼 우리 문학출판계에 이런 독특한 위상과 권위 그리고 '힘'을 갖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자 보람이지 폄훼하거나 비방할 일만은 아니다.

단, 어느 시점부터인지 대다수 문학인들에게 '창비'가 '우리의 창비'가 아니라 편집인을 비롯하여 특정 편집위원들만의 그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정서적'으로 부인할 수 없겠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잘 나가는 소수의 작가들만을 '편애'한다거나 '(과잉) 비평'을 부여하여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수많은 국외자들을 낳게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것이 꼭 누구의 눈에 띄어야만 문학인 것은 아니다. 나는 평소에도 늘 말해왔지만 우리 문학엔 '과대 평가'된 문인들이 의외로 많고 부당히 소외되고 '저평가'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내가 속한 시단의 경우에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최근의 '창비시선'보다는 '실천문학 시선'이 더 '상급'이라고 본다. 그런데 소설이 아니라 잘 팔리지 않는 시집만을 예로 들어선 안되겠지만, 실천문학사는 '상업'에 능하지 못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그 점에서 김남일 대표는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실력'을 길러야 한다).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창비의 '상업주의'를 비판하지만 나는 창비가 문학과지성사보다는 낫지만 왕년의 김영사나 민음사만큼 '영리 추구'에 능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 말리는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판기업에 '상업'을 포기하라는 일부 논객의 주장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다. 조앤 롤링이나 하루키를 수입하기 위해 몇십억원을 갖다바치는 것은 상업주의지만, 우리의 '좋은 문학작품'을 생산하여 이를 널리 팔아 다수 독자와 기쁨을 향유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이제 논란의 출발이 되었던 '신경숙의 표절' 문제로 돌아가보자. 나는 '의도적 베껴쓰기'가 아니라는 창비의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문자적 유사성'이 아니라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문장은 그 어떤 창조적 모방이나 차용이 아니라 의도돠었든 아니든 '부분 표절'이라고 본다. 이 점이 창비와 나와의 견해 차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그게 '노동소설'이냐 '성장소설'이냐를 논외로 치더라도)의 높은 문학적 성취가 전면 부정되거나 '파렴치한 도둑질'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누가 뭐래도 90년대 한국문학을 갱신한 유능한 작가이자 아직도 재능이 고갈되지 않고 '지속 성장'이 가능한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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