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번역자가 말하는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변호사, 변절 아니다"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파수꾼'에서 변절한 것이 아니다. 원래 완벽하지도 않고 모순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독자들이 자신들이 보고 싶어한 것만 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착각한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 소설가 하퍼 리(89)의 '파수꾼'(열린책들)을 번역한 공진호 씨는 '파수꾼' 출간 한달이 된 14일 뉴스1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간 벌어진 논쟁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던 인권변호사인 애티커스가 '파수꾼'에선 인종주의자로 변절했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애티커스의 변절 문제만이 아니라 미국 법무 대리인과 출판사가 작가의 뜻에 반해 '파수꾼'의 출간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 소꿉친구였던 미국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와의 관계 등 딱 한권의 걸작(이제는 두 권)만을 세상에 내놓고 침묵한 하퍼 리의 사생활과 문학세계엔 그만큼 물음표가 많다. 공진호 씨와 함께 하퍼 리 인생과 작품의 수수께끼들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보았다.
-하퍼 리는 어떤 가정에서 자랐나.
▶남부의 중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퍼 리의 아버지 A.C.리는 다정하고 상냥했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주장하는 감리교 신자이자 변호사였다. 하퍼 리는 아버지에게서 개방적이면서 리버럴한 가정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러모로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는 아니다. 그는 진보적인 목사들에게 "사회정의 따위는 집어치우고 복음 얘기로 돌아가라고!"하고 소리지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가 흐르는 동안 그는 시민권 운동에 대해 한층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어머니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15살 위인 큰언니인 앨리스가 하퍼 리에게 엄마 역할을 했다. 하퍼 리는 어머니의 이상행동 때문에 종일 심한 긴장에 빠져 살았다. 하퍼 리는 6세 어린이가 주인공인 '앵무새 죽이기'에서 여주인공의 어머니를 처음부터 죽은 인물로 등장시켰다. 평론가들은 하퍼 리가 이를 통해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미리 씻어내고 소설을 시작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이 말하듯 애티커스는 변절한 것인가.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에서 애티커스는 각각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애티커스는 두 작품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이에 대해선 몇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소설 작법상 어린이의 시점으로 세상을 그릴 때는 인물의 복잡성이 그대로 담겨지기 힘들다. 어른이 봤을 때는 위선적인 면을 간파할 수 있어도 어린이의 눈이 그것을 간파하고 담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앵무새'의 애티커스는 복잡한 인물로 그려질 수 없었다. 하지만 하퍼 리는 '앵무새'에서 애티커스의 모순적인 면모들을 남겨두었다. 다만 이를 독자들이 정밀한 독서를 통해 잡아내지 못하고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포착했다.
너무 이상화된 영화 속 그레고리 펙의 이미지가 역으로 정확한 작품 읽기를 방해했을 수 있고 작품이 너무 유명해져서 비평가들이 제대로 분석해내지 못한 점도 이유다. 어쨌든 '앵무새'를 잘 읽었다면 애티커스가 변절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외국 언론들은 '파수꾼'이 출간되자 '문학적인 면에서 작가가 작품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했다', '정치적 목소리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며 혹평했다. '앵무새'에 비해 '파수꾼'의 문학적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구성이나 서술 등이 '앵무새'보다 미흡하지만 20대 중반의 여성이 인종문제나 편견 등 무거운 주제를 끌까지 밀고 나간 능력과 배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처녀적이자 어떤 편집자의 손도 안탄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잘 쓴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의 편집자가 너무 정치적인 입장이 노골적이라 많은 대중에게 읽힐 수 없다고 판단해 '앵무새 죽이기'라는 작품으로 다시 쓰도록 권한 것은 옳은 판단으로 보인다. 다만 하퍼 리 입장에선 단순히 작가가 되는 것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도 중요했을 텐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조언이 개입되면서 문학성은 확실히 나아진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써보라고 권한 편집자 테이 호호프는 자신도 작가였을 뿐 아니라 문학 방면의 베테랑 편집자였다. 50세의 이 여성 편집자는 엄한 어머니같은 역할을 했다. 하퍼 리와 테이 호호프는 서로 내용을 토론하고, 하퍼 리가 그 다음에 써오고, 다시 테이 호호프가 의견을 내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날 하퍼 리가 쓴 원고를 들고왔는 데 이를 읽은 테이 호호프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무실 창문 밖으로 집어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더 굴욕적이게도 하퍼 리에게 나가서 다 주워오라고 말했다. 테이 호호프는 위압적이고 매우 권위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하퍼 리는 문학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대중적인 코드를 의식해 애티커스라는 '영웅 만들기'에 치중한 것은 아닌가.
▶출판사가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그런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애티커스는 일반인이 생각했듯 영웅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독자들, 특히 백인 독자들은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 숨을 수 있는 거인을 필요로 했을수도 있다. 애티커스라는 영웅적 인물을 우상화하면서 위안을 얻고, 대리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멋진 모습의 그레고리 펙이 영웅적인 면모를 더 강화한 점이 있다.
-흑인들의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올해 스미소니언 매거진 7월호에 실린 폴 서루의 글에 따르면 하퍼 리의 고향 먼로빌에서는 매년 소설을 생생하게 각색한 연극이 상연되는데 지역주민 한 명은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정작 흑인 관객들은 많아야 네다섯 명밖에 안된다. 그 고통스런 과거를 직접 살아낸 흑인들은 그런 자리에 다시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현재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짐작이지만 흑인들은 흑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내용 속에 정작 자신들의 목소리는 없다는 데 불만을 가질 것 같고, 작품 전체의 방향은 그렇지 않지만 '흑인은 어린이에 불과하다',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하며) 아직도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했다'는 식의 편견에 찬 말을 고스란히 듣는 것이 즐겁지는 않을 것 같다.
-내용유출이 안되도록 극비리에 번역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 어떤 식으로 번역이 이뤄졌나.
▶'보안 각서'를 쓰고 1950년대의 하퍼리의 타자 원고를 그대로 복사한 것을 받았다. 매일 번역을 위해 금고에서 원고를 꺼내고 하루치의 번역을 하고 나면 원고를 다시 금고에 넣어야 했다. 내용 유출이 안되도록 인터넷이 안되고 창문이 없는 방이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에 따라 장소가 물색되고 그 곳에서 번역작업을 했다.
-지난해 하퍼 리의 충실한 보호자이자 변호사 역할을 수행했던 언니 앨리스 리가 죽은 지 3개월 만에 갑작스레 '파수꾼' 출간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퍼 리의 인세 수입은 누구에게로 가고 있나. 상속자는 있는가.
▶하퍼 리는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현재 저작권은 하퍼 리에게 있고 돈도 그의 계좌로 들어간다. 하퍼 리에겐 지난해 사망한 큰언니인 앨리스 말고 10살 위인 언니도 있다. 그는 결혼해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만약 특별한 유언이 없다면 재산은 이들 하퍼 리의 조카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의 법률 대리인인 토냐 카터 변호사와는 번역하는 과정 중에 확인할 내용들이 있어서 몇차례 이메일을 교환했다. 애티커스의 소설 속 형제관계가 '앵무새'와 '파수꾼'에 쓰인 것이 달라 확인하는 내용 등이었는데 그는 "주말에 넬(하퍼 리)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후 "하퍼 리가 60년전 쓴 것이라 잘 기억을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퍼 리의 뜻을 왜곡하거나 그에게 전해질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없었다.
-하퍼 리는 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했고 소꿉친구인 트루먼 카포티는 화제를 몰고다니는 스타작가로서 화려한 생활을 했다. 둘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나.
▶알려진 대로 하퍼 리는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의 자료수집과 취재 등을 도왔다. 카포티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딜이라는 이웃집 꼬마로 등장한다.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로 퓰리처 상을 받길 간절히 원했지만 받지 못했다. 반면 하퍼 리는 단 한 작품을 쓰고도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퍼 리의 언니인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그 이후 카포티는 스스로 벽을 쌓고 하퍼 리에게서 멀어졌다고 한다. 하퍼 리는 친구인 카포티가 질투심 때문에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로이 뉴퀴스트가 1964년 뉴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하퍼 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내가 쓴 작품으로 나는 기필코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라는 태도를 갖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퍼 리는 "최고를 갈망하되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글쓰기는 중세의 수도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그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일 뿐이며 그 자체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이며 모순적인 행동이다. 나는 나자신이 아닌 대중을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선 "글쓰기란 대학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쓰기란 무엇보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고, 만약 내면에 그것이 없다면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경건한 삶을 살라'"고 말했다. 카포티의 시끌벅적한 생활을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인지 여러 면에서 하퍼 리는 카포티와 달랐다.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인 '파수꾼'을 한국 독자들은 어떤 점에 유의하며 읽어야 하는가.
▶사실 파수꾼은 인종문제보다 상위의 개념인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인종적, 종교적으로 편견을 갖고 있다. 진 루이즈는 인정차별에 비판적이지만 그 자신도 '아버지'와 '남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또한 '파수꾼'은 중간에 갑자기 회상장면이 나온다든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생소한 미국역사, 그에 대한 암시가 나와 읽기 까다로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미국판에는 없는 각주를 충실히 달았다. 각주와 함께 잘 읽어보면 남부의 전통을 잘 모르는 다른 미국인들보다 도리어 우리가 더 높은 수준의 작품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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