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해도 '내가 죽였다' 거짓자백, 왜?…자백의 비밀 밝힌 '전락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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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우치다 히로후미, 야히로 미쓰히데, 가모시다 유미 엮음·김인회, 서주연 옮김·뿌리와 이파리·1만8000원

1992년 11월 "이 양(애인, 당시 18세)과 여관에 함께 투숙한 뒤 오전 7시께 근무를 나갔다 돌아와보니 이 양이 숨져 있었다"고 신고한 김아무개(27)순경이 범인으로 지목돼 12년 형이 선고됐다.

김순경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와 회유를 받고 허위자백했다"고 자신의 무죄를 계속 주장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기 3일전부터 모두 3시간밖에 자지 못한데다가 조사과정에서도 사흘동안 1분도 잠을 재우지 않아 허위자백할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조사관들은 "범행을 부인해도 어쩔수 없이 살인죄로 처벌을 받는다. 서울경찰청 강력계로 인계되면 자백을 안하고는 못배긴다. 자백하면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죄를 적용해 집행유예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같이 검찰과 경찰은 무고한 현직 경찰관을 살인범으로 몰아 구속기소한 뒤 진범이 자수한 후에도 이를 숨기다가 언론보도 후에야 김순경을 풀어줬다. 진범은 사건 당시 김순경이 근무 나간 직후 이양이 혼자 자던 방에 들어가 수표가 든 핸드백을 훔치다 이 양이 소리를 지르자 목졸라 죽이고 달아난 것으로 밝혀졌다.(한겨레신문 1993년 12월 10일자 '가혹행위로 순경이 살인누명' 요약)

1990년 일본 아시카가 시 파친코 가게의 주차장에서 4세 소녀가 행방불명이 됐다가 다음날 근처 하천부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유치원버스 기사였던 S씨에게 혐의를 두고 감시를 계속했고 그의 DNA와 소녀의 옷에 묻어 있던 정액의 DNA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근거로 그를 추궁해 자백을 받아낸다. S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가까이 복역하다가 DNA 재감정 후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결과가 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

조사 당시 S씨는 검사가 "DNA감정으로, 당신과, 당신 체액과 일치하는 체액이 있어."라고 말하자 처음에는 "그게, 전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절대 아닙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검사가 수시간 동안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야, 당신과 같은 체액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어째서 내 눈을 보고 말하지 않지, 이런 말이야. 아까부터 당신은, 내 눈을 한 번도 보지않았어"하고 몰아치자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라고 죄를 허위로 인정하고 말았다.('전락자백(轉落自白)' 69~72쪽 요약)

범죄 혐의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허위자백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었지만 실제 유죄 오판사례를 분석해보면 5명 중 1명은 허위자백을 했다. 강한 멘탈을 가진 경찰관조차 고문도 아닌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다. 미국에서 DNA 검사로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져 면죄를 받은 303명 중 27%가 거짓으로 범죄를 자백했다.

이들 중 몇몇은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전락'한 가운데 한 자백 때문에 죽음에까지 이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로스쿨 리처드 레오 교수가 30년간 발생한 125명의 허위자백 사례를 추적했더니 35%(44명)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그중 80%(35명)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사형도 9명이나 됐다.

1992년 미국 변호사 배리 셰크와 피터 뉴펠드는 비영리단체 ‘이노센스(결백)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사건을 DNA 감식을 잣대로 규명하는 활동을 펼쳐 2013년 3월 20일 기준 305명에 이르는 무고한 이들을 구했다. 이와 유사한 단체로 일본에는 ‘설원(억울한 죄를 풀어 없앰) 프로젝트’가 있어 이들 역시 무고한 이들을 구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이 책은 이 ‘설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본의 형사법학자, 심리학자, 변호사들로 구성된 ‘진술증거 평가의 심리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회’가 3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네 건의 대표적인 사건을 형사절차와 심리학의 두 측면에서 분석하고 정의로운 민주적 사법제도를 위한 제언을 담았다.

연구회는 이들의 거짓자백이 일상생활로부터 격리,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 통제감 상실,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 부정,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부인의 불이익 강조,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등을 이기지 못한 결과라고 정리했다.

이 책은 또한 형사재판을 개선, 발전시키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줄이기 위한 제언들과 함께 옮긴이인 김인회 인하대 교수가 쓴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 25개를 곁들여 일본의 경우와 우리나라를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는 조사 중의 가혹행위 등을 막기 위해 2007년 일부 범죄수사과정의 영상녹화제도, 2008년 국민참여재판 등의 개선점들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증거의 왕이 될 수도 있고, 증거의 마왕이 될 수도 있는" 전락자백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연구 및 공동연구작업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