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편집 ‘신중한 사람’ 출간한 소설가 이승우

이승우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승우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 "신중한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자기변명을 하려고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중한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용인하고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는 겁니다."

단편집 '신중한 사람'을 낸 중견 작가 이승우(55)는 신중함에 대해 "대게 생각만 하다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움직여야 하는 데 움직이지 못한다"며 밑바탕에 숨겨진 비겁함을 꼬집었다.

표제작 '신중한 사람'의 주인공 50대 가장 Y. 그는 신중한 사람이라 꿈꾸던 전원주택을 짓는 데도 7년을 쏟아부었다.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 낯선 사람이 살고 있다. 관리를 부탁했던 이웃 장팔식은 연락 두절이고 그와 계약한 세입자는 배 째라고 버틴다. 분명 자기 집인데 '시끄럽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기 싫어하는 신중한 성격의 Y는' 월세를 내고 자기 집 다락에 세를 든다.

△ 신중함, 불합리를 받아들이는 논리이승우는 Y에 대해 "억울한 사람이다. 그런데 내면에는 불합리한 상황을 자기변명으로 합리화하는데 그 논리가 '신중함'이다"고 지적했다.

Y는 신중하기 때문에 불합리를 참는 게 아니다. 불편한 것을 꺼리는 Y는 불편한 것을 바로 잡으려 할 때 생기는 또 다른 불편함이 싫기 때문에 참는다. 그러면서 부조리를 참는 자신을 '신중하다'고 위로하며 상황을 합리화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견디고 적응하는 데 약간의 사탕발림이 필요하다. 이승우는 "현실이 억울하니 초현실적인 것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Y는 '애써 가꾼 집을 뺏기고 자기 집에 세 든 집주인'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잊는다. 대신 연못을 고치고 정원을 손질하며 옛 모습을 찾아가는 집을 보며 만족한다. 마치 현실이 너무 고달픈 나머지 초현실적인 세계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이승우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기보다 적응함으로써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중한 사람들이 불합리를 공고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승우 작가. /뉴스1

△ "부조리에 적응하려는 싸움을 그렸다"'리모컨이 필요해', '이미 어디', '딥 오리진' 등 '신중한 사람'에 실린 단편 8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신중하다. 억울하다고는 하지만 싸워서 자기 몫을 챙기는 주인공들은 없다.

그럼에도 이승우는 "부당한 현실 구조에 맞서 있는 아주 나약하고 힘없고 답답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융통성 모르는 인물을 만들어서 싸워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Y도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Y의 싸움은 부조리한 세상과의 대립이 아니라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적응시킬 것이냐의 싸움이다.

비록 그 싸움이 부조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내는 것으로 끝나긴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크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행동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는 내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며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한다.

"예전에는 구조화된 억압이나 폭력적인 권력이 개인을 억압해서 갈등이 생겼다면 지금의 문제는 눈에 확 드러나는 권력의 억압보다는 개인이 스스로 묘한 시스템을 만들어 자기도 모르게 억압에 봉사하는 데서 생기는 갈등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letit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