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고정밀 지도 가져간다…국내 데이터센터 없이 '무임승차'

보안시설 가림·좌표제한·국내 제휴사 서버로 데이터 가공
데이터센터 설치는 제외…"법인세 회피·국내 산업 쇠퇴 우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은빈 김동규 기자 = 구글이 최초 요청으로부터 약 19년 만에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손에 넣었다. 국가의 고정밀 지도를 해외 기업에 개방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도에 군사·보안시설 가림처리와 좌표 표시 제한을 적용하고,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보유한 국내 데이터센터(서버)에서 제한된 길찾기 데이터를 가공해 반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데이터 주권의 핵심인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 조건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아 반쪽짜리 합의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구글은 '한국법'의 규율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국내에 정확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보고하지 않고 이에 따라 수 천 억 원의 '법인세'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혈세로 구축한 국가 지도를 받아가면서도 끝내 정부가 요구한 '데이터센터 국내 구축'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무임승차'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안정보 유출 등 안보 사고가 생겨도 여전히 '국내법' 관할 밖이기에 정부의 조사나 통제를 피하기 쉽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상 보안처리·좌표 제한…지도 반출 '조건부 허용'

27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관계부처로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를 열고 구글이 요청한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허용했다. 지난해 2월 구글이 반출을 요구한 이래 정부는 결정을 세 차례 유보했지만, 약 1년 만에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협의체는 △보안처리된 영상 사용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에서 가공 후 제한된 정보만 반출 등 조건 준수를 전제로 지도 반출 허가를 결정했다.

특히 구글은 스트리트뷰와 구글 어스의 과거 시계열 영상에서도 군사·보안시설이 노출되지 않도록 가림 처리를 의무화해야 한다. 좌표 표시 역시 제거하거나 노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군사·보안시설 추가나 변경이 있으면 정부 요청에 따라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수정 작업을 진행한다. 협의체는 구글에 '보안사고 예방 및 대응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안보 관련 위협 발생 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레드버튼)를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한국 지도 전담관도 국내에 상주하도록 해 소통체계를 유지한다.

이로써 구글은 2007년과 2016년에 이어 지난해 세 번째로 우리 정부에 반출을 요청한 끝에 국내 고정밀 지도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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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쟁점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는 제외

지도 반출의 핵심 쟁점인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은 표면적으로는 수용된 듯 보이나, 실상을 따져보면 국내 기업의 서버를 빌리는 방식으로 납세 의무와 사후 통제 의무를 회피할 여지가 있다.

정부는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에 보유한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고, 내비게이션과 길찾기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만 정부 검토를 거쳐 반출하기로 했다. 등고선 등 안보적으로 민감한 데이터는 반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글이 국내 투자를 통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지 않으면 법인사업자의 의무가 사라진다. 보안 사고에 따른 책임 소재도 분산되고 안보 정보가 유출되더라도 정부 통제가 제대로 미치지 않을 우려가 크다.

정부가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길찾기 데이터가 이미 개방된 1대 2만 5000 축척의 국가 지도와 결합하면 고정밀 지도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구글이 자체 확보하는 고해상도 위성영상까지 결합하면 가공을 통해 사실상 고정밀 지도처럼 국내 지리를 낱낱이 볼 수 있다.

안종욱 대한공간정보학회장은 "정부는 교통 네트워크에 한정되는 제한된 데이터만 반출한다고 하지만, 이 데이터가 구글의 기술력과 이미 개방된 국가 지도와 결합하면 보안정보가 담긴 고정밀 지도와 다름없는 수준으로 구현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피하고 지도만 얻는 구글…국내엔 역차별 우려

구글이 그간 제한됐던 국내 길찾기 서비스를 확장하게 되면서 국내 토종 플랫폼은 시장 지배력을 위협 받게 됐다. 구글은 국내 기업과 같은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법인세는 회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구글은 세계적인 지도 서비스 강자이지만 국내에서는 토종 기업에 밀려 다소 낮은 시장 점유율을 보여 왔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구글 지도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998만 명으로 네이버 지도, 티맵, 카카오맵에 이어 4위(25%)를 기록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고정밀 지도 구축에 25년간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해 왔다. 구글코리아는 2024년 국내에서 386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보고했지만,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스토어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같은 기간 네이버와 카카오를 압도하는 매출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구글코리아의 매출이 10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구글이 납부한 법인세는 172억 원에 그친다. 해당 기간 네이버(3902억 원)와 카카오(1590억 원)가 납부한 법인세의 4% 수준에 불과하다.

단순히 지도 서비스를 넘어 자율주행 등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에서도 구글의 위협이 커졌다. 국내 기업이 대가를 치르고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구글은 제값을 치르지 않고도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를 비롯한 미래 공간산업 발전에 국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2020년 6월 9일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에서 한 운전자가 구글 지도를 따라 코로나19 검사 센터로 이동하는 모습. 2020.06.09 ⓒ AFP=뉴스1
구글 "서비스 구현방안 마련"…산학계 "국내 산업 격차 키워"

이번 결정에 따라 같은 요청을 한 애플에도 지도 반출이 허용되는 분위기에 힘이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애플은 지난해 12월 5일 신청서 보완 기간을 요청하면서 반출 결정일이 올해로 밀린 상태다.

구글 측은 정부의 반출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 및 정보 부문 부사장은 "구글은 구체적인 서비스 구현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한국 정부·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산학계는 일제히 반출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혈세로 구축한 고정밀 지도를 해외 기업에 대가 없이 내주면 국내 산업과의 격차를 키우고, 궁극적으로 데이터 주권이 전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종욱 대한공간정보학회장은 "고정밀 지도는 국가 핵심 인프라 산업의 기반 데이터인 만큼, 국내 지도 서비스 생태계 점유율은 물론 산업 경쟁력이 해외로 종속될 우려가 있다"며 "관세는 국제 정치환경과 협상에 따라 변경될 수 있지만 고정밀 지도는 한 번 반출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be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