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홍수, 5150m 암벽 붕괴서 시작…온난화에 '암석 접착제' 얼음 녹아

국제 기후네트워크 WWA 분석…"기후변화만 원인 아냐"
암반 틈 얼음 녹고 수압 상승…2015년 강진 영향도 배제 못해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 일대. 자료사진.(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AFP=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달 네팔과 중국 국경 일대를 덮친 대홍수는 해발 5150m 부근의 거대한 암벽이 무너지면서 빙하까지 함께 붕괴해 시작된 것으로 분석됐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이번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기간의 온난화로 암석 사이를 붙잡아 주던 얼음이 녹고 빙하가 후퇴하면서 이미 불안정했던 산사면의 붕괴 위험을 키웠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산지대의 얼음은 암석 사이를 붙잡아 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기온 상승으로 이 얼음이 녹으면 암반의 결합력이 약해지고 녹은 물이 암석 틈으로 스며들면서 내부 수압까지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빙하가 얇아지고 후퇴하면서 암벽을 지탱하던 힘도 줄어들어 산사면이 더욱 취약해졌다는 분석이다.

17일(현지시간) 국제 기후연구 네트워크 '세계기상특성분석'(WWA)이 공개한 '신속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네팔 랑탕 리룽 북사면 해발 약 5150m 지점에서 대규모 암벽이 붕괴하면서 암벽 위에 있던 빙하 일부도 함께 무너졌다. 약 2㎢에 이르는 암석과 얼음은 약 1400m 아래 계곡 바닥으로 떨어졌다.

암석·얼음 낙하 뒤 빙하수·영구동토층 더해져 토석 홍수로

낙하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규모 5.5 지진에 해당했다. 사고 초기 지진이 산사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분석 결과 관측된 지진파는 대규모 암벽·빙하 붕괴 자체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석과 얼음은 계곡에 떨어진 뒤 녹은 빙하수와 빙하 아래·영구동토에 저장된 물, 하천수 등이 뒤섞이며 대규모 토석 홍수로 변했다.

물과 얼음, 암석, 퇴적물이 뒤섞인 흐름은 하류 22㎞ 떨어진 라수와가디 국경지역까지 불과 7분 만에 도달했다. 평균 이동속도는 시속 188㎞였다. 홍수는 7시간이 채 되지 않아 약 200㎞ 떨어진 데브가트까지 내려갔으며, 이곳 하천 유량은 약 5850㎥/초로 2배 이상 불어났다.

"기후변화만 원인 아냐…암반 내부 수압 높아져 취약성 키워"

WWA는 이번 재난의 단일 원인을 기후변화로 보지는 않았다. 암반의 지질 구조가 어디서, 어떻게 사면이 무너질지를 결정했고, 장기간의 온난화와 강수 형태 변화가 암반 틈의 얼음과 암석·빙하 경계를 약화하고 내부 수압을 높여 기존 취약성을 더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를 기존의 지질학적 취약성에 작용한 '불안정화 요인'으로 봤다.

사고 전 히말라야는 이례적인 고온을 겪었다. WWA가 현재 기후를 산업화 이전보다 1.4도 낮은 가상의 기후와 비교한 결과 인간 활동에 따른 기후변화는 사고 직전인 7~8월 이 지역 기온을 약 1.5도 높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평균으로는 약 2도, 일부 겨울철에는 최대 3도까지 온난화 영향이 나타났다.

빙하와 영구동토 변화도 산사면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 빙하는 수십 년 동안 연평균 0.5m 이상 얇아졌고, 랑탕 리룽 빙하의 면적 후퇴율은 과거 약 200년간 연 0.5%에서 2010년 이후 연 1~2.3%로 빨라졌다. 빙하가 얇아지면 주변 암벽을 받쳐주던 힘이 줄고, 암반 틈의 얼음이 녹으면 균열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

기온 0도선도 최근 수십 년간 몬순과 몬순 이후 계절을 중심으로 10년당 약 100m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구동토 해빙과 빙하 감소, 눈에서 비로 바뀌는 강수 형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10년 전 '네팔 강진' 영향도…'빠른 재난'에 경보체계 한계

2015년 네팔을 강타한 규모 7.8 지진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랑탕 리룽 일대에서 대규모 암벽·빙하 눈사태가 발생한 뒤 높은 고도에서 산사태 활동이 증가했지만, WWA는 이번 붕괴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간 유발 기후변화가 없었더라도 이번 암벽·빙하 붕괴가 발생했을지를 직접 평가하지는 않았다. 이를 확인하려면 지하 암반 온도와 균열 내부 수압, 산사면의 역학적 변화 등에 대한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난의 속도는 기존 경보체계의 한계도 드러냈다. WWA는 이번 재난의 규모와 속도, 복잡성이 기존 위험 저감 체계의 설계와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며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에서는 현재의 경보체계로 충분한 선행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WWA는 고산지역 지구관측과 위험 모니터링, 국경을 넘는 데이터·지식 공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지역에서는 추가 온난화가 멈추더라도 과거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 감소와 영구동토 해빙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