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AI 모델은 바뀌지만 '표준'은 남는다
- 나연준 기자

(서울=뉴스1) 나연준 기자 = "가장 큰 AI 생태계를 가진 자가 글로벌 AI 표준을 설정하고 광범위한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미국 백악관이 2025년 7월 발표한 인공지능(AI) 행동계획 첫 문단에 나오는 문장이다. 최고의 성능을 가진 AI 모델이 아니라 '가장 큰 생태계'를 가진 자가 '표준'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AI 경쟁에서 미국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AI 패권 경쟁 중심에는 '성능'이 있었다. 누가 더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했는지, 매개변수는 얼마나 큰지, 벤치마크에서 어느 모델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는 그동안 AI 경쟁력을 판별하는 잣대였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은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느냐'를 넘어 '누구의 AI 생태계 안에서 세계가 움직이게 할 것인가'의 싸움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필사적이다.
미국은 AI 행동계획에서 "첨단 반도체부터 모델, 애플리케이션까지 미국 AI를 세계의 스탠더드로 만들고 동맹국들이 미국 기술 기반으로 AI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AI 모델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도록 하고, 기술 규격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성능이 뛰어난 AI 모델을 오픈웨이트 방식으로 제공하며 글로벌 기업과 연구기관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7월 상하이에서 개최한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는 개방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중국 중심의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축을 제안했다.
미국과 중국의 접근법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하다. 더 많은 기업과 개발자를 자국 AI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주도하는 기술과 규칙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9월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AI가 주요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누가 글로벌 AI의 규칙과 표준을 주도할 것인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펼쳐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표준'이 만들어지고 자리 잡게 되면 그 영향력은 매우 강해질 수 있다.
한번 특정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 잡고, 그 위에서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기업의 서비스가 연결된 규칙 체계를 바꾸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AI가 다른 AI와 소통하고, 외부 서비스를 호출해 업무를 수행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것인지, 인증과 보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규칙은 필요하다.
이미 이러한 경쟁은 시작됐다. 아직 표준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앤트로픽이 주도하는 AI 모델과 외부 데이터·도구를 연결하는 MCP(Model Context Protocol), 구글이 이끄는 서로 다른 AI 에이전트 간 통신을 위한 A2A(Agent2Agent) 같은 규격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안전과 신뢰성에 대한 인증과 규제 부분에서의 표준은 단순한 기술 규격을 넘어설 수 있다. 안전, 보안, 신뢰성 등에서 표준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사실상 시장 진입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산업 주도권과도 직결될 수 있다.
AI 강국을 꿈꾸는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GPU를 확보하고, 글로벌 최첨단 AI 모델과의 벤치마크 격차 등을 좁히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AI 생태계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에이전트형 인공지능 재단(AAIF)에 가입해 앤트로픽,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하는 에이전틱 AI 관련 국제 표준화 작업에 합류한 것은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소식이다.
AI 시대 표준은 정부나 국제기구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MCP나 A2A와 같은 기업의 기술이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사용하게 된다면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AI를 얼마나 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사용하는지, 국내 기업의 기술이 글로벌 AI 생태계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는지 고민하고 이런 기술이 '사실상 표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AI 모델은 계속 바뀐다. 오늘 1위인 모델이 몇 달 뒤 새로운 모델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 반복되는 게 지금의 AI 산업이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연결된 표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이제는 AI 규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를 목표로 뛰어야 한다.
yjra@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