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는 코인사기]①"나 ○○○이야" 유명인 사칭한 '가짜' 판치는 카톡방

유명 블록체인 투자사 대표 사칭한 계정, 가짜 거래소 사이트까지 버젓이
'단톡방'서 투자한 후 누명 씌워 퇴출…주식 리딩방 사기, 코인으로 넘어가

편집자주 ...자산시장 붕괴로 곳곳이 비명이다. 깊어지는 침체의 그늘에 절박해진 투자자들을 노리는 '코인사기'가 판친다.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검은손'이 독버섯처럼 퍼져가고 있다. 가상자산 종류가 다양해지고, 시장에 흐르는 자금 규모도 커진 만큼 사기 수법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비해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인 탓에 예방은 여전히 어렵다. <뉴스1>은 진화한 코인 사기 수법을 짚어보고 피해를 미연에 막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서울=뉴스1) 박현영 김지현 박우영 기자 = #"나 ○○○이야." A씨는 지인의 소개로 이름만 대면 알법한 유명 블록체인 투자사 대표 B씨가 주도한다는 '추세환율투자' 카카오톡방에 가입했다. 방장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포털 사이트 및 각종 기사에 등장하는 B씨의 모습과 진배없다. 기사 사진뿐만 아니라 가족과 찍은 사진, 회사 동료와 찍은 사진까지 프로필 사진에 있어 영락없이 그를 '진짜 B씨'라고 믿었다.

결국 A씨는 방장이 제안한 금액인 5000만원을 '인터네셔널익스체인지'라는 이름의 거래소 사이트에 입금했다. 카카오톡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같은 금액을 투자했다고 했다. 거래소 에 표시된 자산은 꾸준히 불어났고 2억7000만원까지 찍었다. 이렇게 '대박'을 맛보는구나 싶을 무렵, 사달이 났다.

카카오톡방에 있는 다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자산은 2억7000만원보다 적은 1억8600만원으로 표시된다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방장은 같은 금액을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수익을 내게 돼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거래소가 출금을 막는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방장과 투자자들은 A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금액을 추가로 더 투자했을 것이라며 의심했고, 급기야 A씨 때문에 거래소가 출금을 해주지 않는다며 추궁했다. 결국 A씨는 카카오톡방에서 퇴출당했고 초기 투자금 5000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유명 블록체인 투자사 대표가 사기를 쳤다며 경찰에 신고했지만 방장은 실제 B씨가 아닌 사칭 계정이었다.

◇'○○○ 대표의 리딩방'…가짜 거래소 사이트까지 만들어

가상자산(암호화폐) 하락세가 이어지는 '크립토겨울'이 도래했지만, 가상자산은 여전히 단기간 내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자산으로 꼽힌다. 유명 블록체인 투자사나 기업의 대표라면 가상자산으로 '고수익'을 올렸을 것이란 추측은 자연스레 따라 붙게 된다.

이에 이 같은 추측을 활용한 '카카오톡 투자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명 블록체인 기업 대표를 사칭하면서, 해당 대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있는 사적인 사진을 대거 프로필 사진으로 활용해 투자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식이다.

B씨를 사칭한 계정이 운영하던 '추세환율투자'방. 독자제공

A씨도 사칭 계정을 철석같이 믿었다. 결혼식 장면까지 있는 프로필 사진이 신뢰감을 더했다. 투자사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블록체인 투자사가 '추세환율투자'를 한다는 점은 좀 이상했지만, 회사가 개발한 자체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낸다고 했다.

100만원 미만 소액을 투자했던 A씨는 해당 자금이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을 확인했다. 이에 A씨는 그 'AI 프로그램'을 신뢰하게 됐다.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단체 카카오톡방에 가입해 5000만원을 덜컥 입금했다.

입금한 계좌는 '거래소 담당자'의 계좌였다. B씨 사칭 계정이 만든 가짜 거래소 사이트다. 단순 사칭이 아닌 더 고도화된 수법을 이용한 것이다.

해당 사이트는 '인터네셔널익스체인지'라는 가짜 거래소였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가장 신뢰받는 글로벌 표준 디지털자산 거래소'라는 슬로건이 나온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의 슬로건과 같다. '거래하기', '거래내역' 등 사이트 내 기능도 일반 가상자산 거래소와 같아 A씨 같은 일반투자자들이 현혹되기 쉬웠다.

B씨 사칭 계정이 활용한 가짜 거래소 사이트 '인터네셔널익스체인지'. 기능 및 화면을 일반 가상자산 거래소와 똑같이 구현해뒀다. '가장 신뢰받는 글로벌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업비트의 슬로건이다. 독자제공.

다만 입금은 일반적인 거래소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업비트, 빗썸 같은 원화마켓 운영 거래소에선 사용자의 실명계좌와 연동되는 거래소 지갑에 돈을 넣지만, '인터네셔널익스체인지'에 입금하기 위해선 거래소 담당자 안 모씨의 계좌로 돈을 부쳐야 했다.

안 모씨의 계좌로 부친 자산은 다행히 거래소 내 지갑에 반영됐다. 이후 A씨는 카카오톡방에서 B씨 사칭 계정이 시키는 대로 거래소 내 버튼을 클릭했다. AI프로그램을 통해 예측한 것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니 이내 돈이 불어났다.

B씨 사칭 계정은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가짜 거래소 사이트 내에서 어떻게 거래하면 되는지 상세히 안내했다. 해당 계정이 시키는 시간에, 시키는대로 투자하면 이내 자산이 불어났다. 독자제공

하지만 가짜 거래소 '인터네셔널익스체인지'는 자산이 불어난 것만 보여줄 뿐, 불어난 자산은 출금해주지 않는 블랙홀이었다.

B씨 사칭 계정은 공범으로 보이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A씨의 잘못으로 인해 출금이 되지 않는다고 몰아갔다. 같은 금액을 투자했는데, A씨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소 출금이 막혔다는 것이다.

B씨 사칭 계정과 공범으로 보이는 단체 카카오톡방 참가자들은 같은 금액을 투자했는데 A씨만 남은 자산 규모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A씨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 거래소 출금이 막혔다고 주장하며 A씨를 카카오톡방에서 퇴출시켰다. 독자제공

A씨는 속수무책으로 카카오톡방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해당 거래소 사이트에는 출금이 안 된다는 문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유명 블록체인 기업 대표를 사칭하는 사례는 A씨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1세대 블록체인 기업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도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피해 사례를 고발했다. 표 대표는 "제 이름을 사칭해 주식 리딩을 하는 일당들에 대해 제보를 받았는데 설마 속는 분이 있으려나 무시했는데 결국 피해자들이 생겼다"며 "사칭 발생 즉시 무조건 수사 의뢰하며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에는 '체인파트너스 세력과 함께하는 작전주 정보 제공방', '체인파트너스 세력주 작전주 브리핑 방' 등의 이름으로 개설된 오픈채팅방이 존재했다. 방장은 표 대표 사진을 프로필로 내세운 사칭 계정이었다.

그중 한 방은 51명이 참여한 상태였다. 모든 방이 체인파트너스와 무관했으나, 이를 믿은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해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사칭 계정 어떻게 구별하나…"카톡으로 투자자 모으진 않아"

A씨 사례와 같은 일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상자산 시장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유명 블록체인 기업 대표들의 인지도를 이용한 사기 범죄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유형의 사기를 어떻게 예방할지가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블록체인 투자사 및 기업들이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으로 투자자를 모으는 경우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사는 펀드를 조성해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자체 가상자산을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도 발행 단계에선 기관투자자들에게만 토큰을 판매하고, 이후 토큰을 거래소에 상장해 일반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톡 같은 채널을 이용하는 경우는 없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에 생성된 투자방은 대부분 사기라는 설명이다.

가장 쉬운 예방법은 블록체인 기업 대표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톡방 또는 커뮤니티가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위 A씨 사례의 경우 사칭 계정이 활용한 건 블록체인 투자사 대표의 이름이었으나, 정작 카카오톡 방명은 '추세환율투자'였다. 해당 투자사가 평소 투자하는 곳들과는 거리가 멀다. 투자사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지는 해당 투자사 홈페이지 내 포트폴리오로 확인할 수 있다.

C씨 사칭 사례 또한 블록체인 기업의 인지도를 이용하면서 카카오톡 방명은 '작전주 리딩방', '작전주 브리핑방' 등으로 지었다. 주식시장에서 활용하던 사기 수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사칭 대상만 블록체인 기업 대표로 바꾼 경우다.

이는 주식시장에서 비슷한 사기 수법을 활용했던 세력들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성행하던 투자 리딩방 사기가 코인으로 아이템이 바뀐 경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