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유통에 피멍든 웹툰]①"밤토끼 잡아도 똑같아…삶이 갈려 나간다"

매년 늘어나는 불법 사이트 트래픽…합법 사이트보다 높아
웹툰 불법 유통 이후 작가 수입 6분의 1로 떨어지기도

8일 유해 광고와 함께 불법 복제 웹툰을 유통 중인 사이트(웹사이트 갈무리)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날마다 12시간씩 쉴 틈 없이 그려서 완성한 작품이 공개되면 30분 만에 불법 웹툰 사이트에 올라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세상에서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만난 웹툰 '베리타스'의 김동훈 그림작가는 불법공유 피해를 겪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한국만화가협회 '웹툰 불법공유 TF팀'에서 특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8년 국내 최대 규모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가 검거됐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불법 웹툰 시장 규모는 해마다 점점 커지고 있다.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기업 코니스트에 따르면 전체 불법 웹툰 사이트의 트래픽은 밤토끼가 기승을 부렸던 2017년 106억건에서 2020년 약 3.5배 늘어난 366억회를 기록했다. 이는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등 합법 웹툰 플랫폼 트래픽의 총합인 337억회를 상회하는 수치다.

월 평균 3500만명, 하루 평균 116만명이 찾았던 '밤토끼'가 2018년 폐쇄됐음에도 불법 시장은 해마다 커지면서 결국 합법 사이트 규모를 넘어서게 됐다. 국내 작품의 번역본이 업로드되는 해외 사이트까지 더하면 트래픽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늘어나는 불법 사이트로 인한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합법 사이트가 불법 사이트로 인해 받은 경제적 침해 규모는 약 5488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9년 3183억원보다 1.7배 증가한 수치다.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 작업실에서 김동훈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웹툰 작가 74.6%가 경험한 불법 유통…"정당하게 소비해주세요"

이처럼 불법 공유 웹툰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웹툰 작가들은 '미리보기' 회차를 유료로 제공함으로써 수입을 올리는데 불법 웹툰 사이트가 작품을 무단으로 업로드해버리면서 수입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수입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많은 작가가 불법 공유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중 74.6%가 불법 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작품이 올라간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대부분의 웹툰 작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

2005년부터 출판 만화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김 작가는 이미 불법 복제로 출판 만화 시장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웹툰이 뜬다고 해서 다시 돌아왔는데 과거와 똑같이 불법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니 만화를 정말 하고 싶은 제 입장에서는 시장이 또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고 밝혔다.

그의 주변에는 실제로 수입이 뚝 떨어진 작가들도 많다. 그는 "어느 작가분은 자신의 작품이 불법 사이트에 공유되고 난 후 수입이 6분의 1로 줄었다"며 "힘들게 데뷔해서 살아남아도 작품을 도둑맞으면 삶이 갈려 나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불법 웹툰 사이트를 이용하지 말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한 웹툰 작가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작품의) 무사 엔딩을 희망하신다면 제발 불법으로 웹툰을 관람하지 말아 주세요"라며 "수입이 없으면 저는 더 이상 연재를 하지 못하고 조기 엔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건 협박이 아니고 현실입니다"고 밝혔다.

웹툰 불법유통 피해에 공감한 독자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을 진행해 지난 6월 지하철 역사 광고를 통해 '웹툰·웹소설 불법 유통 근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7일 불법 웹툰 사이트에서 이뤄지고 있는 채팅. 만화 및 웹툰으로 추정되는 작품의 불법 한국어 번역본을 요청하고 있다.(웹사이트 갈무리)

◇모니터링·사이트 차단으로는 한계…"이용자 인식 개선 필요해"

이처럼 작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는 너무나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불법 사이트 서버가 해외에 있는 탓에 운영자 검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니터링 및 사이트 차단으로 일차적인 접근을 막고 있지만 도메인 주소를 변경하면 다시 접속이 가능해 이같은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웹툰 사이트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밤토끼' 폐쇄를 비웃듯 '밤토끼 시즌2'라는 사이트가 등장했으며 ○토끼, 아○툰 등 다수의 불법 사이트가 웹툰을 불법 복제해 업로드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 도박, 카지노, 성인용품 등의 광고를 통해 이득까지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청 및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웹툰 1412개를 무단으로 게시한 불법 사이트 운영자 2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검거는 인터폴을 통한 해당 국가 수사기관과의 공조로 이뤄졌으며 사이트는 폐쇄됐다.

하지만 운영자 검거나 사이트 폐쇄보다 웹툰이 불법 복제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른 상황이다. 불법 사이트를 이용하는 독자들의 이용 근절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만화가협회 웹툰 불법공유 TF팀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