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리뷰]3억명 쓴다는 제페토…"로블록스는 게임인데, 제페토는 뭐임?"
'비(非)게임 메타버스'의 반전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10일 오후 2시, 제페토 인기 맵 중 하나인 '캠핑'에 접속하자 20여 명의 사람들이 빨간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있었다. 모닥불 주위엔 형형색색의 텐트가 줄지어 있었고, 맞은 편엔 잔잔한 호수 위 푸른빛 보름달이 빛나는 모습이 혹 동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때 이어폰 너머로 "이제 제 차례죠?"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10대 여자아이로 추정되는 앳된 목소리였다. 그리고 대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를 본 순간 말없이 알 수 있었다~내 인생을 망칠 구원자란 걸~♪"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랫말. 가사를 검색해보니 가수 이하이의 '구원자'라는 노래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님 다음은 제 차례입니다"라며 저들끼리 순서를 정했고,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이크를 끄고, 노랫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게 메타버스인가?'
◇ "로블록스는 게임인데, 제페토는 뭐임?"
로블록스와 제페토는 각각 북미·유럽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메타버스'(가상현실) 플랫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서비스의 차이점. 앱마켓 구글플레이에서 로블록스는 '게임' 앱으로 분류돼있지만, 제페토는 '엔터테인먼트' 앱으로 분류돼있다.
지난 4일, 제페토의 글로벌 가입자 수가 3억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대중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로블록스에선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제페토에선 도대체 무얼 하고 노느냐는 의문이다.
실제 로블록스에 접속하면 거대한 오락실에 들어온 것처럼 수백 개의 '게임'을 이용할 수 있지만, 제페토엔 공원·학교·체육관 등을 옮겨놓은 듯한 '공간'만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제페토에 접속해본 결과, 기성세대들의 우려와 달리 10대들은 너무나 '잘' 놀고 있었다. '공간'과 '친구'만 있으면 놀이 기구 없이도 재밌게 놀았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 "잠시 후, 걸그룹 오디션이 진행됩니다"
제페토 인기 맵 중 하나인 '블랙핑크 하우스'(블핑 하우스) 맵에도 접속해봤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3층 규모의 대저택이 펼쳐졌다. 잠시 후 '부대표' 직함을 달고 있는 아바타가 나를 집 안으로 안내했고, 그곳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여기서 '상황극'이 시작됐다. 부대표는 "잠시 후 오디션이 진행될 예정이니 지원자들은 1층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오라"고 안내했다. 블핑하우스는 아이돌 상황극 놀이를 하는 공간이였다. 나름 시스템도 체계적이었다. 데뷔 순서는 연습생→1차합격→2차합격→3차합격 →데뷔준비→데뷔→걸그룹 순서로 돼 있었다.
지원자들은 '대표' 앞에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제페토가 지원하는 '제스처' 기능을 이용하면 각종 춤을 출 수 있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핑크퐁 아기상어'부터 JYP엔터테인인먼트의 신인 걸그룹의 춤까지 다양한 댄스가 준비돼 있었다.
직접 오디션에 참가해 20여 초 간 무반주 댄스를 추자 대표가 "네, 다음 지원자요"라고 짧게 답했다. 오디션 합격자에게만 '연습생' 칭호를 부여했다.
◇ '비(非)게임 메타버스'의 반전
직접 제페토를 체험해 본 결과, '비(非)게임 메타버스'의 반전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물론 게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로블록스보다 '진입장벽'은 높게 느껴졌다. 난생 처음 제페토에 접속해본 사람이라면, 광야에 던져진 이방인처럼 혼란을 느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가상 사회에 녹아들 수 있다면, 게임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 땐 그네, 시소, 정글짐 같은 놀이 기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뛰어놀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마음이 맞는 친구만 있다면 '땅따먹기·경찰과도둑·신발던지기·병원놀이' 같은 게임은 무한대로 쏟아져 나왔다.
어쩌면 제페토엔 스스로 게임을 만드는 수억 명의 '10대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곳이 아닐까.
제페토 운영사인 네이버제트는 지난 4일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3억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2월 가입자 2억 명을 돌파한 데 이어 1년 만에 1억명이 추가로 가입한 수치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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