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리뷰] 대권주자 이낙연을 만났다…"사진찍자" 하니 춤을 춰줬다

(왼쪽부터) 기자 본인을 본뜬(?) 제페토 아바타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제페토 아바타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 뉴스1 송화연 기자

(서울=뉴스1) 송화연 기자

"이낙연님이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어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렇게 쉽게 친구가 될 줄은 몰랐다. 불과 30분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네이버가 만든 '메타버스' 제페토에서 말이다. 온라인 세계에선 '반모'(반말모드)를 해야 '진짜 친구'가 된다고 하는데 짧은 시간 그와 스치는 바람에 '반모' 여부를 묻지 못했다.

요즘 대세 '메타버스' 서비스가 대권주자 사이에서도 인기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대권주자는 '제페토'에 의원실을 차리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와 소통에 나섰다.

◇美 대선 앞두고 유세장 된 '동물의숲'…韓 '제페토'서 표심잡기

제페토는 네이버가 지난 2018년 8월 출시한 증강현실(AR) 아바타 플랫폼으로, 전 세계에서 2억명이 넘는 가입자를 모았다. 제페토 이용자는 본인과 똑 닮은 3차원(3D)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에서 활동하는데 친구와 문자나 음성으로 대화를 하거나 함께 다른 맵(공간)을 탐험할 수도 있다.

제페토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등교하지 못하는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제페토를 통해 방과 후 수다를 떨거나 고민상담을 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에 제페토에서 가장 인기있는 맵 중 한 곳이 학교를 본뜬 '교실2' 맵이다.

그런 제페토에 유명 정치인이 등장했다. 이는 정치무대를 '가상세계'로 확장해 젊은 표심 잡기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업글희룡월드'라는 맵을 만들어 제페토 활동을 시작했고,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22일 제페토에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맵을 만들어 가상 출마선언식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나타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은 대선을 앞두고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통해 비대면 선거 유세를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 캠프는 '바이든 섬'을 만들어 지지자를 맞이했다. 당시 그와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 지지자들이 몰리며 명성을 떨쳤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제페토 맵에서 포즈를 취해봤다. ⓒ 뉴스1 송화연 기자

◇정치인이 이렇게나 친근할 일?…셀카 요청에 춤도 춰주네

정치인의 성격·취향은 제페토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 벚꽃을 의미하는 듯 입구부터 분홍색 벚꽃 나무가 가득했다. 화려한 식당이나 커다란 홍보 문구도 이목을 끌었다. 그의 제페토 맵은 홍보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아바타 꾸미기를 진심으로 즐기는 이용자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는 작정하고 맵을 만든 듯 했다. 대형 홍보 전광판이나 좌석 배치까지 현실의 선거 유세장을 가상으로 옮겼다는 느낌을 줬다. 질적인 부분에선 여타 정치인보다 앞서 있는 모습이다.

이 전 대표는 제페토 맵을 통해 자신의 국가 비전과 가치 등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그는 △복지 △경제 △정치 △평화 △미래 △문화 △교육의 7가지 요소를 연못으로 표현해 행사장을 둘러쌓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제페토 맵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홍보 문구. 그의 제페토 맵에 접속하면 이 홍보 문구를 관람하고 있는 다른 이용자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 뉴스1 송화연 기자

정치인들의 제페토 활동에서 좋았던 점은 정책 홍보물을 간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바일에 익숙한 MZ 세대에겐 종이 홍보물보다 가상 세계의 홍보물이 더 친숙한 홍보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현실 세계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정치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정치인과 함께 가상공간을 뛰어다니고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점은 가상세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 요소임에 틀림없다.

지난 24일 오후 7시30분쯤 제페토 맵에서 만난 이낙연 전 대표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줬다. 여러 포즈를 선보이더니 틱톡에서 인기있는 춤을 춰주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게 정치인은 근엄하고 진지한 인물이기 마련인데, 이러한 편견을 깨주는 좋은 장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팔로우' 기능을 통해 정치인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이 전 대표는 기자가 그를 팔로우한 지 30분 만에 '맞팔로우' 해주는 센스를 보였다.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미덕으로 통하는 '맞팔로우'를 알고 있는 그가 내심 가깝게 느껴졌다.

다만 제페토가 MZ세대 표심확보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해 낼지는 의문이다. 제페토의 주 이용자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로 투표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 따르면 제페토의 전체 이용자 중 80% 이상은 10대 청소년이며, 90% 이상이 외국인 이용자다.

30대 제페토 이용자 A씨는 "대학생만 돼도 제페토 이용을 잘 안 하는 분위기인 데다 이용자 2억명 중 대다수가 글로벌 이용자라 정치인의 제페토 활동이 보여주기식 행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낙연 전 대표의 제페토 방문자가 약 1800명 정도인데 1500명 정도는 상대 후보 캠프나 기자들일 것"이라고 첨언했다.

업무상 제페토를 이용한다고 밝힌 20대 B씨는 "제페토 내 제일 큰 방에서 동시접속이 가능한 인원이 16명이라 가상 연설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메타버스를 활용한 홍보 수단일 뿐 정치인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어렵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메타버스 실험은 젊은 층의 표심잡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를 추구하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에게 '소통'과 '재미'는 큰 매력포인트기 때문이다.

'이낙연 님이 새로운 게시물을 추가했어요'라는 알람에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지지자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상과 함께 이런 문구가 남겨져 있다.

"함께 춤을 추고 싶다 채팅 남겨주신 OO님, 이낙연은 응답합니다!"

hway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