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연구실을 찾아]'천사' 지도교수님에게 배운 것…"채찍질보단 격려"
명지대 반도체공정진단 연구실, '건강한 연구실'에 선정
동료 교수 "교육 방식에 따라 인력 달라지는 것 경험"
- 정윤경 기자, 김승준 기자
(서울=뉴스1) 정윤경 김승준 기자 = 대학원생의 '갑질 수난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갑질논란은 줄기차게 보도되지만 왕처럼 군림하는 지도 교수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다독이고 함께 나아가는 교수들도 있다. 정부가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한 명지대학교 반도체공정진단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홍상진 교수는 "속에서 열불이 나더라도 학생을 기다려 주어야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난 25일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 자연캠퍼스에서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이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건강한 연구문화 확산과 연구자의 사기진작을 유도하기 위해 올해 처음 '건강한 연구실' 선정 사업을 추진, 명지대와 서울대 등 총 6곳을 '1호 건강한 연구실'로 선정했다.
이날 명지대는 6개 1호 연구실 중 한양대에 이어 두 번째로 현판식을 개최했다.
현판식에 참석한 정병선 과기정통부 1차관은 "과학기술 주무 부처에서 일한지 30년이 돼가는데 다양한 정책을 펼쳐도 '성과가 왜 안 나오느냐', '우리나라는 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며 "해외 사례를 보니 연구실을 지도하는 교수의 운영 방법이 중요했고, 좋은 사례를 많이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에서 '건강한 연구실'을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명지대 반도체공정진단 연구실은 반도체 공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진단시술에 대해 연구하는 곳으로, 반도체 공정과 관련된 장비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실 구성원은 총 26명으로, 산학협력이 활성화 돼 있으며 학생들의 취업 및 진로지도에 방점이 찍혀있고 다양한 전공 출신을 아우르는 자유로운 문화가 특징이다.
정 차관은 이날 OLED 증착장비, 플라즈마화학기상증착(PECVD) 장비 등이 있는 실험실을 10분여간 둘러보고 간담회를 통해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과 개선 방안에 대해 청취했다.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홍상진 교수는 "예전에 연구실에 있을 때 지도 교수의 별명이 '천사'였다"며 "그분한테 연구실 운영에 대해 배웠고,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화가 나더라도 참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냥 참는다"라고 답했다. 홍 교수는 "학생들에게 화를 내서 채찍질을 하는 것보단 격려를 해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그 학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민우식 명지대 교수는 홍 교수에 대해 "학생들이 요구하면 거절한 적이 없다"며 "실험실 장비가 굉장히 고가임에도 학생들이 망가뜨리거나 해도 그냥 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땐 어리버리 해도 1~2년이 지나면 굉장히 발전해있다"며 "홍 교수를 보며 어떤 방식으로 교육 시키느냐에 따라 인력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송완수 학생은 정부에 바라는 점으로 장학 제도의 개선을 꼽았다.
그는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보니 또래보다 금전적으로 부족한 편"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정 차관은 "영국 같은 경우는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도 대기업 초봉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원을 확대하려고는 한다"고 답했다.
한승수 명지대 산학협력단장은 교수를 위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단장은 "교수 입장에서는 과제를 따와서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주지만 교수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다"며 50억 과제를 따와도 장비를 사고, 학생 인건비, 재료비로 나가면 본인에게 혜택은 없는데, 그런데도 열심히 과제를 따내는 교수들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정 차관은 "상금은 얼마되지 않지만 '건강한 연구실' 현판식도 하나의 인센티브"라며 "연구를 많이 하는 교수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건강한 연구실'은 바람직한 연구문화 확산과 연구자의 사기진작을 유도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올해 처음 추진한 사업이다. 명지대 외에도 한양대, 전북대, 포스텍, 서울대 등 총 6곳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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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 참 많이 변했죠? 기업들은 '부장님' 호칭을 버리고 '위계적 칸막이'를 없애는 등 수평적 문화 만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책까지보며 '90년생 배우기'에 열심이죠. 그런데말입니다. 참 변하지 않는 곳이 대학 연구실입니다. 교수님은 여전히 대학원생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이죠. 과학 R&D에 연간 2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는데 '꼰대 교수님'과 '90년생 대학원생'이 공존하는 연구실이 변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이미 현장은 변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문화에 성과까지 탁월한 '건강한 연구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