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우정총국으로 꽃핀 우본…ICT발달에 '과로사 오명' 첫 파업(종합)

135년 우정 역사상 처음…과중·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요구
집배원 2000명 추가 고용 예산 안건..손놓은 국회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우정노조 총파업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강은성 기자 = '과로사'로 추정되는 집배원 사망이 9명에 달하자 전국 2만7000여 우정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과중한 업무 부담을 해소해 달라며 총 파업을 결의했다. 우정 노동자들의 파업은 135년 우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은 25일 조합원 2만8802명중 2만7184명이 참석해 2만5247명(약 92%)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원 투표 결과 약 92%의 찬성을 얻어 오는 7월9일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파업은 1884년 개화기 때 우정총국이 설치된 이래 1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1958년 노조 출범 이후로도 60년 만에 처음 결의한 파업이다.

우정노조는 공무원 2만여명과 비공무원 7000여 명이 가입한 우정사업본부(우본) 내 최대 규모 노동조합이다. 교섭대표노조 권한을 갖고 있고 국가 공무원법에 따라 노동운동이 허용되는 유일한 공무원 노조다.

또 우본은 공무원이면서 정부 예산을 받지 않고 이익잉여금을 오히려 정부 재정으로 내놓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다.

전국우정노동조합 총파업 찬반투표가 진행된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수원우체국에서 경인지방본부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News1 조태형 기자

◇ICT 발달로 '악화일로' 우편사업 vs 집배원 노동강도는 높아져

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집배원들의 잇따른 과로사다. 우정노조에 따르면 올해 과로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집배원은 모두 9명이다.

정작 본업인 우정사업은 지속적인 재정위기 속에 침체를 겪어왔다. 90년대 이메일이 대중화된데 이어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까지 일상화되면서 우편사업은 악화일로다. 그러나 우체국은 도서 산간 벽지에도 우편물을 전달하는 '보편적 서비스'라 업무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집배원들의 근로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져가고 있다는 것이 우정노조의 설명이다.

지난해 우본 노사와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해 구성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나타났다. 국내 임금노동자 평균인 2052시간보다 693시간 많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3시간보다 982시간 긴 시간이다.

이는 1년을 52주라고 봤을 때,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거의 다 근무해야 해당 일수를 채울 수 있다. 특히 배달물량이 집중되는 설과 추석기간 노동시간은 주당 68시간~70시간 일을 했다는 것이 기획추진단의 설명이다.

최근 10년간 총 166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는데 이에 대한 건강역학조사와 직무스트레스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집배원들의 심혈관계질환, 사고, 호흡기질환, 소화기질환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도 "우정서비스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현 수준의 저렴한 요금과 높은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집배원들에게 과중한 업무가 몰리는 게 지속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직과 경영 전반을 혁신하는 것은 물론 집배원 근로 현장 개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 중구 소공로 서울중앙우체국을 방문해 우체국용 초소형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2018.8.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집배원 2000명 더 필요한데..안건 처리 맡은 국회 '나몰라라'

이에 우본은 재정을 확충하고 집배원 2000명을 추가 채용하는 방안을 마련해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또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본부' 단위인 조직을 과기정통부 산하 '우정청'으로 승격시켜 달라는 입법안도 2017년 상정했지만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국회 관계자는 "우본은 보편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배원 과로 등 사회적 문제가 적지 않은 상태여서 근본적인 조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강 본부장은 "집배원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본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다"면서 "집배원 2000명 추가 채용을 위한 재정 확보를 위해 국회에 예산을 요청했고, 사고 위험이 높은 오토바이를 1인승 전기차로 교체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도서, 산간 지역 등은 드론을 이용한 배달 시스템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기차 도입과 드론 배송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현재 만연한 집배원의 업무 과중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우정노조는 현재 우본에 △집배원 인력증원 △완전한 주5일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유지·운영수준 결정 신청서를 접수했다. 지난 20일 중앙노동위원회 1차 조정회의를 열었지만 우본이 예산 등을 문제로 우정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아 결렬되는 등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강 본부장은 "우정사업본부는 7월9일 파업까지 연결되지 않도록 남은 기간 동안 우정 노조와 대화를 지속해 최대한 조속히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약 합의안 도출이 지체된다 하더라도 필수 우정서비스가 차질 없이 제공되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우정노조 총파업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주영(앞줄 왼쪽 세번째)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동호(두번째) 우정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지도부들이 총파업 구호를 외치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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