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성공의 상징' 팬택, 두번째 시련이 닥치기까지
한때 LG전자 제치고 국내 2위까지 등극…끝내 자금확보에 '발목'
- 맹하경 기자
(서울=뉴스1) 맹하경 기자 = 벤처기업으로 시작해서 한때 매출 3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중견 수출기업으로 우뚝 섰던 팬택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2일 끝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선택했다. 이날 팬택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채권과 채무가 모두 동결되면서 사실상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하기 어렵게 된다.
팬택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도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했지만, 4년여만에 화려하게 부활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각고의 노력끝에 개발한 스마트폰은 전세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덕분에 팬택은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종료한 이듬해 2분기에 5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팬택의 부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가 위축되기 시작한데다 중저가폰으로 무장한 중국업체들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결국 글로벌 사업을 접고 내수시장에 올인하게 된 팬택. 때마침 불어닥친 정부의 규제바람은 내수시장에 집중하려는 팬택을 맥없이 무너뜨렸다. 무려 69일간 지속된 이통3사의 순차 영업정지는 팬택의 판로를 가로막았고, 여기서 비롯된 유동성 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팬택은 법정관리를 선택하면서 또다시 회생기회를 엿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삐삐'로 시작해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까지…벤처신화로 '우뚝'
팬택은 '벤처기업 성공신화'로 불린다. 팬택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은 1991년 29살의 나이에 팬택을 설립했다. 단돈 4000만원으로 시작한 무선호출기 '삐삐' 사업으로 출발한 팬택은 1997년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해 5월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OEM 휴대폰 공급 계약을 따내면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사업에 탄력을 받았다.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현대큐리텔의 부진이 부족한 자금이라 판단한 박 부회장은 자신의 팬택 지분을 모두 내놓고 1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받았으며 이를 연구 개발에 쏟아부었다. 2002년 현대큐리텔은 사명을 팬택&큐리텔로 바꿨고 매출 8500억원, 영업이익 650억원을 기록하며 만년 적자에서 탈출했다. 팬택&큐리텔은 세계최초 33만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제품을 포함해 캠코더폰, T슬라이드폰 등 특화된 디자인과 기능으로 인기를 끌었고 2003년 1조가 넘는 매출을 달성하며 팬택계열 매출 2조 돌파의 1등 공신이 됐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스카이' 브랜드도 손에 넣었다. SK텔레텍은 SK텔레콤 전용 단말기를 생산했으나 SK텔레콤이 당시 정보통신부로부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정돼 생산 제재를 받았고, 팬택이 SK텔레텍의 지분 60%를 매입해 대주주로 등극했다. 그해 팬택계열 총 매출은 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장미빛 행보는 이듬해부터 위기를 맞게 된다. 휴대폰 시장의 공급과잉 사태는 심각해졌고 해외시장으로 나가 노키아, 모토로라 등과 경쟁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부었지만 성과는 부진했다. 2006년 9월 기준 팬택의 부채비율은 무려 478%에 달했고 2007년 1차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워크아웃 중 팬택은 전체 임원의 60%를 잘라내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해외 수출 국가도 50개국에서 10개국으로 대폭 축소했다. 대신 워크아웃 기간 중 총 1조원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쓰면서 기술 연구에 집중했다. 2007년 3분기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한 뒤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010년 12월에는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2011년 3분기 322만대를 팔아 전분기 대비 28.2%, 전년동기 대비 10% 오른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베가 레이서', '베가 LTE' 등 신제품도 시장의 호응을 얻었다.
◇운영자금 '바닥'…끝내 법정관리 신청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성장세를 이어가려던 팬택은 또 다시 발목을 잡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보다 다소 떨어지는 제품력, 완성도, 서비스 등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올초 이통사 순차 영업정지의 여파가 컸다. 인력을 줄이고 국내 시장 중심으로 수익성을 재편하며 제2의 도약을 꿈꾸던 순간 이통3사는 각각 45일간의 영업정지 조치를 부과 받았다. 영업정지 기간 국내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60%나 감소했고, 국내 시장에 몰두하려던 팬택은 직격타를 맞았다. 1~2월 흑자를 내던 팬택은 판로가 막혀 3~4월 연속으로 적자를 냈다.
끝내 팬택은 지난 2월 2차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당초 팬택 채권단은 팬택의 채무 3000억원을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이통3사가 보유하고 있는 매출 채권 1800억원에 대해서도 출자전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불발되면서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팬택이 출자전환 대신 채권 상환 유예를 요청했고 이통3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팬택 채권단은 경영정상화 수정 방안을 지난 1일 결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결국 운영자금이 족쇄가 됐다. 이통3사에 단말기 13만대를 납품해 900억원 상당의 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이통3사는 재고 부담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30만대, KT 18만대, LG유플러스가 12만대 정도 팬택의 재고를 가지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팬택의 단말기를 구매해서 이 재고들이 소진된다면 자연스럽게 팬택의 물건을 다시 사들일 것"이라며 팬택측에서 먼저 소비자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품 판로가 막혀버린 팬택은 이날 이사회를 통해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팬택법원은 향후 1개월 이내에 개시 여부를 판단하고 실사를 거쳐 팬택의 회생 혹은 청산을 결정하게 된다. 팬택이 회생절차를 밟는다 해도 이통3사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어 회생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법원이 팬택의 구조조정을 포기해 청산을 결정할 경우 팬택 사옥 등 팬택 자산을 매각하게 되며 이 금액은 은행과 이통3사, 협력사 등이 채권액 비율에 따라 나눠 갖게 된다. 팬택의 빚은 금융권 채무 등 총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kmaeng@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