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채널서 같은 영화가…"끼워팔기 묵인하는 제도 손질해야"

한국언론학회, 유료방송 채널거래 시장 개선 방안 마련 세미나 개최
200여개 채널 조합 분석 결과, 채널간 중복편성률 최대 98%

유성진 숭실대 교수가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테에서 '유료방송 채널거래 시장 개선 방안 마련'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한수민 수습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한수민 수습기자

# TV를 켜자 수백개 채널이 뜬다. 리모컨을 들고 한참을 돌려보지만 채널명만 바뀔뿐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찍어낸 듯 똑같다. 재탕삼탕 프로그램만 반복적으로 트는 채널을 돌리다 보니 3년 약정을 맺고 월 3만 원씩 내고 있는 유료방송요금에 '현타'가 온다.

현재 유료방송 시청자들은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가 인기 채널과 중복 편성 비중이 높은 계열 채널을 함께 '끼워팔기'(묶음거래)하면서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 유료방송사업자의 콘텐츠 대가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유료방송사업자가 원하지 않는 채널도 현행 채널 종료 규정과 정부 가이드라인 때문에 계약에서 제외하기 어려운 상황을 지적하며 시장 현실에 맞게 관련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언론학회는 지난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유료방송 채널거래 시장 개선 방안 마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유성진 숭실대 교수는 MPP의 중복편성과 묶음거래 구조가 유료방송사업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가 한국케이블TV협회 자료를 가지고 MPP 9개 사 43개 채널, 193개 채널 조합을 분석한 결과, 채널 간 중복편성률은 최대 98%다.

그는 중복 편성률이 80% 이상인 채널을 사실상 동일 채널로 간주하면 일부 MPP의 영화 채널은 명목상 3개지만 실질적으로는 1개 채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유료방송사업자는 3개 채널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고 소비자도 3개 채널을 기대하고 요금을 내지만 실제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은 1개에 불과하다"며 "명목상 채널 수와 실질적인 선택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원인으로는 중복편성 자체보다 이들 채널이 협상 과정에서 하나의 묶음으로 거래되는 구조가 문제를 지적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채널별 사용료가 따로 적혀 있지만 유료방송사업자가 비주력 채널만 제외하려고 하면 주력 채널까지 포함한 전체 계약이 중단될 수 있어 채널별 협상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끼워팔기를 금지하는 규정과 제재 수단이 이미 마련돼 있음에도 규제기관이 비주력 채널 종료 신고가 '합의되지 않은 종료'라는 이유로 반려하고 있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유 교수는 유료방송사업자가 원하지 않는 채널은 계약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MPP가 채널별 개별계약을 거부한 경우 이를 채널 종료 사유로 인정하고 끼워팔기 판단 기준을 구체화해 채널별 개별 협상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테에서 '유료방송 채널거래 시장 개선 방안 마련' 세미나 ⓒ 뉴스1 한수민 수습기자
"사적 계약 종료, 정부 가이드라인이 발목…제도 개선해야"

한승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유료방송사업자와 MPP 간 협상이 자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로 채널 종료 규정과 정부 가이드라인을 꼽았다.

한 변호사에 따르면 프로그램 공급계약은 사적 계약으로 법원에서도 기간 만료 시 종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보고 있으나 정부 가이드라인이 이용약관 신고와 재허가 조건 등이 사실상 계약 종료를 제한하고 있다.

실제 유료방송사업자가 특정 채널을 종료하려면 방송법상 이용약관 변경 신고를 해야 하는데 정부가 사업자 간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하거나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감점 요소로 반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사업자들은 계약 종료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에 한 변호사는 MPP의 채널별 개별계약 거부를 채널 종료 사유로 인정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사업자 간 계약은 원칙적으로 자율에 맡기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분쟁조정과 금지행위 규제를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대규 KT HCN 연구원 역시 "케이블TV사업자(SO)가 우월적 지위에 있던 시기에 도입된 규제가 지금도 유지되면서 협상력의 비대칭을 키우고 있다"며 "변화한 시장 환경을 반영해 사업자들이 더욱 자율적이고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용희 선문대 교수는 "묶음판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하나의 묶음으로 거래되는 순간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한 가격을 형성하기 어려워진다. 사업자들이 채널을 개별적으로 거래하고 협상이 결렬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시장가격도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며 "사업자들에게 '판을 깰 권리'를 돌려주고 낱개 거래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j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