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네요"
[자사주 쌓아둔 中企]⑫ 뉴스1 전문가 좌담회(上)
"법으로 허용해놓고 이제와 죄인 취급" vs "기업이 신뢰 저버려"
- 이정후 기자, 장시온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장시온 기자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는 상황 자체는 반대합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둘러싸고 팽팽한 대립각을 보이던 경영계와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소각 의무화 법적 강제'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놨다. 법률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와는 맞지 않다는 것.
하지만 법적 강제력이란 것에 대한 원론적인 반대일 뿐이다. 자사주는 소각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전문가들과, 기업의 경영 자율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라는 경영계 의견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중소기업을 비롯한 경영계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취득한 자사주까지 소급 적용해 소각을 의무화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한 반면,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그동안 기업들이 자사주를 잘못 활용하고 있었기에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반론했다.
또 경영계는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동참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와 인식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전문가들은 더 이상 기업의 자율에 맡길 수 없다고 맞섰다.
뉴스1은 그간 진행해 온 [자사주 쌓아둔 中企] 기획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발의된 직후인 지난 26일 경영계 대표 단체와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특히 관심과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 상장회사의 경우 이번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으로 인해 경영 전략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를 초청했다.
경영계는 합법적으로 취득한 기존 자사주도 향후 소각 의무 대상에 소급 적용되는 것에 대해 "법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며 강한 반대의견을 제기했다.
박화선 중기중앙회 기업성장실장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게끔 해놨으면서 (법이 바뀌었으니) 이를 소각하라는 것을 두고 중소기업의 불만이 많다"며 "소각을 의무화하려면 신규 취득 자사주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했을 때는 활용 목적이 있었을 텐데 유예기간 6개월 후 모두 소각하라고 하니 (교환사채 등으로) 처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법의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사주를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중소기업계에서는 기존 자사주에 소각 의무화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재산권 침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계를 대표해 참석한 대한상공회의소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 기업의 경영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송승혁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 금용산업팀장은 "자사주를 재무구조 개선에 적절히 활용하면서 기업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주주에게도 더 좋은 일인데, 이것이 과연 비난할 일인가"라고 반문하며 "잘못된 사례도 있지만 자사주 취득으로 주가 부양 효과 등도 있기에 득이 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소액주주를 대표해 참석한 이상목 액트 대표는 그동안 기업들이 자사주를 취득 목적대로 활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에 주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자사주 취득 목적에 '주주가치 제고'라고 밝혔으면서 어느 순간 경영권 방어한다고 처분하거나, 자금 조달을 위해 교환사채 발행에 쓰겠다고 한다. 심지어 소각하겠다고 했으면서 안 하는 경우도 많다"며 "자사주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니 소각 의무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반론했다.
자사주 소각이 재산권 침해라는 경영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자사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형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자사주 소각을 재산권 침해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출발점"이라면서 "자사주는 배당가능이익, 즉 주주에게 돌려줘야 하는 자금으로 취득한 것으로 기업의 자산이 아닌 주주의 재산이기에 자사주를 산 순간 사라지는 것이라는 점을 경영계가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사주를 처분하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소각은 이를 할 수 없으니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배주주의 상당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주주를 등한시 한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이 아깝다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서 제3자배정 증자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자금 조달 수단을 위한 편법으로 사용하지 말고 정공법을 선택하라는 주문이다.
이같은 공방에 대해 이번 자사주 기획 전편을 자문했던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회계사는 "이번 기획을 자문하면서 회사들이 자사주를 50% 넘게 갖고 있는 경우도 봤는데 이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경영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면서 "자사주는 의식적으로라도 소각을 전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자사주 보유율 톱10 기업을 살펴보니 자사주를 보유하게 된 이유가 모두 다양했다. 전략적으로 자금 활용을 하기 위해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주주 환원 목적도 있는 등 이유가 제각각이었고 이것이 모두 기업의 경영전략이라고 판단된다. 기업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가 자사주 소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적대적 M&A'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송승혁 팀장은 "해외에서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제,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제도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자사주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금지한다면 기업은 경영권을 어떻게 지키라는 말인가"라며 "사모펀드나 외국계 자본에 경영권 위협을 받으며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기업은 중장기적인 투자나 비전을 가질 수 없고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주주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형균 부회장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은 평균 40% 초반"이라며 "사실상 현재 지분율만으로도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뺏길 위험은 거의 없다"고 반론했다.
이어 "지난해 고려아연 사태에서도 대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봤다. 현재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실제로 적대적 M&A 세력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송 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반박하며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쓰는 것이 잘못됐더라도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금융감독원이 교환사채 발행을 못하게 하니 기업들이 실제로 발행하지 않는다.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기업 문화와 인식 제고가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경영계 의견에는 전문가들도 모두 같은 뜻을 보였다. 상장된 회사가 자사주를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고 이를 자율적으로 소각하고 주주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도 많은데, 일부 일탈된 기업의 행동 때문에 결국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을 잃어버리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이상목 대표는 "자사주 소각에 대한 법적 강제에 대해 저는 단호히 반대한다. 이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자사주를 회사의 재산처럼 인식하는 경영계 의견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러니 결국 법으로 소각을 의무화해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형균 부회장도 "자본시장은 지나친 법의 개입보다 자율규제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훨씬 경쟁력 있다"면서 "법적 강제가 진행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이에 맞춰 경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화선 실장은 이에 대해 "이미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 의무'가 부여됐고 그 의무에 따라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주주 이익에 맞게 처분하는 기업들이 더 많다"면서 "중소기업은 처분 등을 위한 경영전략 변화에 대응력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천편일률적인 규제보다 기업의 상황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대준 대표 회계사는 자사주가 기업 입장에서 과연 그렇게까지 '쓸모 있는' 자산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회사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돈 주고 사왔지만 아무 쓸모없는 자산을 들고 있는 셈"이라면서 "기존 보유 자사주는 되도록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맞되, 법적으로 (강제)할 거면 신규분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진행=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장시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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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스1>이 전수조사를 한 결과 국내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율이 높은 100대 기업의 84%가 중소·중견기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유독 중소·중견기업이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소각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승계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일종의 편법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1>은 상대적으로 언론과 사회의 감시에서 비껴나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자사주 보유 현황과 지배구조를 전문가와 함께 직접 분석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