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딜' 쏠리는 VC, 지원만 바라는 창업자…창업낭인 된다"

[혁신이 죽었다⑫]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
"자신만의 기준 없으면 '창업' 의미 퇴색…투자도 마찬가지"

편집자주 ...대한민국 혁신은 죽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전세계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낙오됐고, 여타 산업에서도 기술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 저력이 있다. 골든타임은 되살릴 수 있다. IMF도 극복해낸 민족이다. <뉴스1>은 2025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혁신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정책, 자본시장 전문가를 만났다.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가 서울 용산구 인사이트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4.12.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이승배 기자

투자금은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 아닙니다. 투자를 받았다면 투자자가 성공적으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창업자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창업자들 중에는 그저 '지원금'만 좇는 '창업낭인'도 있어요. 이런 사람에게서 '혁신'이 나올리 있겠습니까."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여러 기업의 고문 역할을 해온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는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중심 잡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때그때 큰 흐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강 대표가 보기에 창업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매출 규모에 집중하다가 사업이 휘청이기도 하고, 투자자들은 유행하는 산업에 터무니없이 높은 기업가치로 투자하기도 한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수많은 기업의 고문으로 활동해 온 강 대표를 만나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네트워크에 목메지 말고 사업 모델 집중하라"

"선배 창업가, 유명한 멘토, 알만한 사람 뒤만 쫓아다니는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스타트업 CEO들 중에는 이런 '인맥'이 자신의 경쟁력이 된다고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맥이 도움이 되는 일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사업 잘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합니다. 인맥은 부수적인 일일 뿐이죠."

초기 창업가들은 비즈니스를 하며 많은 고민을 마주한다. 공동 창업자가 있다면 고민을 공유할 수 있지만 혼자라면 처음 걷는 길 위에서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다양한 네트워킹 행사에서 만난 선배 창업가들은 같은 고민을 먼저 경험한 등대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는 "선배 창업가나 성공한 사람들을 맹신하거나 따라다니는 건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조언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조언일 뿐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선배 창업가들을 따라다닐 시간에 당장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 강남에서 ESG 분야 유망기업을 소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데모 데이가 진행되고 있다. 2022.11.1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정부 지원금 등 잿밥에만 관심…창업 낭인 된다

그가 창업가들에게 자신만의 중심을 잡으라고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외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을수록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즉 '창업'이 목적이 돼야 하는데 '투자 유치'가 목적이 된 경우다.

강 대표는 "투자를 받기 위해 현금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매출만 키우는 경우가 있다"며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투자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건 투자 유치 스킬만 늘어난 거지 좋은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사업을 하면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망하기 쉽다"며 "혼자만 망하는 게 아니라 직원, 투자자 모두에게 손실을 입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오싹한 이야기까지 했다. 정부가 창업을 활성화 하고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세금으로 지원하는 예비창업패키지나 팁스 등의 지원금을 '따내기' 위한 사업을 하는 창업낭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창업 지원금을 받으려면 일정 기준에 맞춰야 하다보니 이를 따내려고 컨설팅까지 받는 기업들도 있다"면서 "정부 지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 스타트업의 성장에 기틀이 된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사업 확장을 위한 지원금이 아니라 투자 자체를 목표로 한 기업의 경우 투자를 받았다고 안주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은행 대출금은 담보가 필요하고, 갚지 못했을 경우 연체이자, 신용등급 하락 등 패널티가 크다. 하지만 투자금은 은행처럼 '갚아야'하는 자금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창업자는 투자금 자체를 매출로 생각하거나 쉽게 써버리는 경우까지 나온다고 했다.

"(투자금을 함부로 소진하는 창업자는) 사실상 경제사범입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자본주의 사회,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인데 투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쓰는 창업자가 있다면 그 자체가 범죄에 준하는 나쁜 행위라는 것이죠. 창업자는 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갚지 않아도 되는' 대표적인 투자금으로 정부 지원금이 꼽히다보니 이 지원금만을 노리는 창업낭인이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정부의 창업 지원금을 받아본 사람은 폐업하고 몇 년 뒤에 또 창업해서 정부 지원금을 찾아다니는 패턴을 보인다는게 강 대표의 지적이다.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인사이트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4.12.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투자자에게도 명확한 기준 필요…클럽딜, 부메랑 돼 돌아온다

강 대표가 강조하는 '중심 잡기'는 창업가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돈을 대는 벤처캐피탈에도 적용된다. 이는 소위 '클럽딜'이라고 불리는 공동 투자 방식에서 중요해진다.

클럽딜은 벤처캐피탈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벤처캐피탈이 결성한 펀드 규모가 작아서 투자 금액이 제한적이거나 기업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벤처캐피탈 간 공동 투자 방식으로 클럽딜이 이뤄진다.

하지만 강 대표는 유행하는 산업을 따라가려는 일부 심사역들로 인해 클럽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이 주목받으면 큰 고민하지 않고 친분이 있는 다른 심사역과 투자를 검토한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때 몸값이 크게 뛴 플랫폼 스타트업들에 다수의 투자가 이뤄진 뒤 기업가치가 반토막 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 대표는 "벤처캐피탈이 클럽딜에만 의존하면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다같이 투자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진짜 투자 잘하는 곳은 요즘 투자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하는 게 투자자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창업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 성공한 창업가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창업가는 고용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성공한 신생 창업가를 시기와 질투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걸 바꿔야 합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