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도 렌터카도 필요 없다"…'프로 뚜벅이'들의 성지 된 스위스

수력발전 철도·전기버스·친환경 유람선까지
이동 자체가 관광이 되는 스위스 교통의 비밀

고르너그라트 열차(스위스관광청 제공)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비싼 렌터카도, 운전면허도 필요 없다.배낭 하나만 메고 가도 알프스 가장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으니까.

요즘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스위스는 '프로 뚜벅이러'들의 성지로 통한다.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대자연을 감상하며 스마트폰 하나로 전국을 누비는 것 자체가 하나의 힙한 여행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소비로 증명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에 아낌없는 Z세대의 취향까지 제대로 저격했다. 단순히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을 넘어, 대중교통을 타는 행위 자체가 가장 트렌디하고 친환경적인 여행이 되는 스위스의 숨은 교통 공식을 살펴봤다.

13일 스위스관광청에 따르면 스위스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철도, 버스, 유람선을 기반으로 전국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외국인 여행자도 렌터카 없이 불편함 없는 전국 일주가 가능하다.

특히 대중교통의 핵심인 기차는 다른 동력 교통수단 대비 현저히 낮은 탄소를 배출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수단으로, 철도 운행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스위스 전체 교통 및 수송 분야 탄소 배출량의 단 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관광청 제공)
"브레이크 밟으면 전기가 생겨요"…진화하는 스위스 철도

스위스 대중교통의 척추 역할을 하는 스위스 연방 철도청(SBB)은 기차 운행 전력의 90%를 수력발전으로 자체 생산해 충당한다. 기차역사와 사무실, 차량 생산 시설 등 주요 인프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는 이미 100% 탄소 중립을 달성했다.

특히 기관사들이 정지 표지판 앞에서 불필요한 급정차를 피하고 최적의 속도로 친환경 주행을 하도록 돕는 '그린 웨이브'(적응제어) 시스템이 도입돼 승객들에게 한층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승차감을 제공하고 있다.

베르니나 특급 열차(스위스관광청 제공)

알프스의 웅장한 풍광을 가로지르는 래티셰 철도(RhB)와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철도의 기술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베르니나 특급'을 운영하는 래티셰 철도는 일찌감치 2013년부터 기관차와 시설 에너지를 100% 수력 전기로 전환했다. 여기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외부 공기 컨트롤, 난방용 재생 에너지 사용, 현대적 재활용 시스템까지 꼼꼼하게 갖추며 에너지 최적화를 실천 중이다.

체르마트 한복판에서 마터호른 정상을 직행으로 잇는 고르너그라트 철도는 한술 더 떠 선제적 에너지 관리를 위한 '회생 제동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기차가 산을 내려올 때 발생하는 동적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하행 3번의 여정으로 상행 기차 2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전력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선로 위를 달리는 발전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취리히 풍경(스위스관광청 제공)
120년 전부터 물로 움직였다…산악 교통의 기막힌 아이디어

절벽 및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케이블카와 푸니쿨라(산악 열차) 역시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브루니 바넨 엥겔베르크는 2018년 스위스 최초로 기후 중립 케이블카 인증을 받았다. 자체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 연간 전력 소비량의 15% 이상을 직접 생산해 스키장 전 슬로프의 인공 눈 제설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충당한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이른바 'CO2 프리' 눈 위를 질주할 수 있다.

또 '리스티스~브루니휘테' 구간의 체어리프트는 이용 승객이 없을 땐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계돼 전력 소비를 10%나 덤으로 아낀다.

마지막 수력 추진 푸니쿨라(스위스관광청 제공)

스위스 엔지니어링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프리부르의 '푸니'(Funi)는 1899년부터 지금까지 오직 '물의 힘'으로만 작동하는 마지막 수력 추진 푸니쿨라다. 3000리터 용량의 탱크에 담긴 정화된 하수와 56.4m의 고도차만을 이용해 전기도 매연도 없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살아있는 친환경 유산이다.

1887년부터 빌/비엔느와 유라 산지를 오가는 마글링엔 푸니쿨라 역시 상부 역사 지붕에 42kW 규모의 대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으며 제동 에너지를 다음 상행 운행에 곧바로 재활용해 전체 에너지 비용을 30%나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루가노 호수의 유람선(스위스관광청 제공)
매연 없는 호수, 소음 없는 도시…유람선과 전기버스의 약진

잔잔한 스위스의 호수와 복잡한 도심 인프라 역시 탄소 지우기가 한창이다.

루가노 호수에는 1931년에 건조된 선박을 스위스 최초의 100% 전기 모터 크루저로 개조한 '체레지오 1931' 선박이 운항 중이다. 매일 정기 여객 노선에 투입된 최초의 전기 선박이라는 기록을 쓴 이 배는 루가노 시의 첫 100% 전기 노선인 '그린 라인'을 이끌고 있다. 해당 선박 회사는 2035년까지 보유한 17척의 배 전부를 전기선으로 바꿀 예정이다.

'자동차 없는 마을'로 잘 알려진 청정 지역 체르마트는 이미 1988년 1월 세계 최초의 전기 저상버스를 도입해 30년 넘게 배출가스 없는 저소음 이동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인터라켄을 누비는 포스트버스(스위스관광청 제공)

현재 인근 슈투트가르트와 체르마트 현지에서 직접 제작한 배터리 구동 버스 10대가 2개 노선에서 시속 20km의 여유로운 속도로 마을을 누빈다.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인터라켄 역시 구석구석을 누비던 스위스의 상징적인 노란색 포스트버스를 수력발전으로 충전하는 조용한 '이-포스트버스(E-PostBus)'로 교체해 청정 자연을 지키고 있다.

스위스 최대 도시 취리히의 도심 풍경도 바뀌고 있다. 트램과 트롤리버스의 전기 구동화에 이어, 2030년까지 도심을 달리는 150여 대의 디젤버스 대부분을 전기버스로 전면 교체해 완벽하게 깨끗하고 조용한 도심을 완성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