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헌팅? 핀란드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본다

영하 23도, 눈·베리·장작·고요로 완성된 핀란드식 오로라 체험
레비 오두막에서 만난 겨울밤…오로라보다 강렬했던 것들

핀란드 레비 ⓒ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레비(핀란드)=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겨울이면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의 레비(Levi)는 하루에 두 번 색을 바꾼다. 오후엔 분홍빛이, 해가 지면 보랏빛이 하늘을 채운다. 그리고 이 빛들이 모두 사라진 뒤, 북극의 밤은 오로라가 흐를 준비를 한다. 숲속 오두막에서 시작되는 오로라 투어는 그 변화의 과정을 가장 조용히,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방법이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레비의 밤, 오로라가 완성한다

레비에서 오로라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겨울이 완성되는 순간'에 가깝다. 북극권에서는 태양풍이 대기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빛을 오래전부터 계절의 신호로 여겨왔다. 사미인들은 오로라가 "조용한 하늘의 움직임"이라 부르며,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표로 여긴다. 이런 환경 때문에 겨울밤 오로라 투어는 레비 여행에서 가장 북극다운 체험으로 꼽힌다.

투어는 밤 8시, 레비 중심가에서 방한복(외투·바지·부츠·장갑·모자 세트)을 대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레비에서 대여할 수 있는 방한복 세트ⓒ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가격은 1인 약 20~25유로, 여행사에서 직접 대여하거나 호텔에서 사전 예약해 수령하는 방식이다. 11월 말의 기온은 영하 20~23도까지 떨어져 일반 겨울옷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방한복 착용은 필수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레비 외곽의 라우할라(Rauhala) 숲. 눈 덮인 침엽수가 양옆으로 포개지고 그 사이로 얼어붙은 호수와 외딴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 조명이 닿지 않는 이곳은 북극광을 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이곳은 세계기상지구(WMO)의 글로벌 대기감시망이 '유럽 최상의 공기질을 보이는 지역'으로 기록한 곳이기도 하다.

밤하늘 위로 희미하게 빛을 내는 오로라ⓒ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오로라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쉽게 촬영할 수 있다. ⓒ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투어를 맡은 케이트 드 브루인 아틱 프런티어(Arctic Frontier)대표는 오두막 앞에서 "오로라는 쇼처럼 '등장'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밤은 아주 조용히, 아주 천천히 흐른다"며 "중요한 건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경험이다"고 말했다.

오로라를 보는 것을 '오로라 헌팅'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려운 줄 알았지만, 도착하자마자 바로 눈 앞에 펼쳐졌다.

아틱 프런티어(Arctic Frontier)에서 운영하는 통나무집ⓒ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북극 숲 오두막에서 맛본 따뜻한 한밤의 휴식

약 15~30분가량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오로라를 감상한 뒤 케이트 대표는 "이제 몸을 좀 녹여요"라며 통나무집으로 안내했다. 통나무집은 대기 장소가 아니라, 차가워진 몸을 잠시 복구하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북극의 휴식실' 같은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난로 안에 장작이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스노우 칵테일'이 건네졌다. 갓 쌓인 눈을 잔에 담고 클라우드베리·빌베리 시럽과 진저비어를 섞어 만든 이 음료는 북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질감이었다. 눈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베리의 산미가 입안에서 가볍게 튀었고 영하의 공기를 마신 뒤라 한 모금만으로도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 케이트 대표가 직접 구웠다는 넷틀(쐐기풀)·치즈 브레드가 이어졌다.

케이트 대표가 "봄에 어린 잎을 따서 가시를 없애면 이런 향이 난다"고 설명하자마자, 따끈한 빵에서는 풀 향과 치즈의 고소함이 동시에 퍼졌다. 속을 채우는 음식은 아니지만, 차갑게 굳은 손끝과 뱃속을 천천히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갓 쌓인 눈을 잔에 담고 클라우드베리·빌베리 시럽과 진저비어를 섞어 만들어 먹는 스노우 칵테일ⓒ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따뜻하게 먹는 요구르트ⓒ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체험객들에게 레비의 자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케이트 드 브루인 아틱 프런티어 대표ⓒ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이어 더 작은 코타(오두막)로 이동해 차가버섯 차를 마셨다.

묵직한 흙향이 도는 이 차는 북극권 사람들이 겨우내 즐겨 마시는 '면역 강화 음료'이다. 부드럽게 데운 요구르트 위에 사과와 베리를 올린 디저트도 나왔다. 영하 20도의 공기와 따뜻한 요구르트가 대비되며 기묘하게 깊은 맛을 남겼다.

케이트는 대표는 "오로라가 전부인 투어를 원하지 않는다"며 "사람과 자연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비 여행을 몸소 즐기고 있는 여행객들의 모습ⓒ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오로라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중요한 이유

케이트 대표는 현재 오로라 투어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요즘 오로라 투어는 '카우보이 산업'(cowboy industry)이 됐다"며 "안전보다 돈을 우선하는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밤새 차량을 몰고 이동하는 9시간짜리 '올나잇 투어'가 등장한 것을 두고 "매우 위험한 방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부 업체가 내세우는 '오로라 보장'(guarantee)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자연현상을 보장할 수는 없다"며 "그런 말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철학은 분명했다. 케이트 대표는 "누군가에게는 오로라가 안 보인 밤도 특별한 경험이어야 한다"며 "중요한 건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행위' 자체로 자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많이 열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비에서는 오로라의 밝기·색·형태가 날마다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빛을 쫓는 것보다 숲의 온도·눈의 소리·불빛 없는 하늘을 느끼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레비의 밤ⓒ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해가 지고 있는 레비의 풍경ⓒ News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라플란드 사람들에게 겨울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낮의 분홍빛과 저녁의 보랏빛이 사라진 뒤, 숲은 비로소 제 색을 드러낸다. 이곳의 오로라 투어는 '볼거리'가 아니라 '머무르는 시간'에 가깝다. 북극의 숲을 거닐고 얼음 아래 고요함을 듣고, 오두막에서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머무른 그 밤이 여행자의 기억을 오래 잡아둔다.

케이트 대표는 "오로라가 보이는지보다, 그 밤을 누가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