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영업익 5% 과징금…경제계 "기업 존폐 우려"(종합2보)
산안법 개정안 국회 통과…"기존 처벌 두고 옥상옥으로 제재 더해"
"고용·협력업체에도 영향…하위 법령 위임 규정으로 부작용 최소화"
- 박기호 기자, 박기범 기자, 김진희 기자, 오현주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박기범 김진희 오현주 기자 =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제계가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기업을 존폐 위기로 내몰 수 있는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산업재해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적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제재는 그대로 둔 채 추가적인 규제를 부여하는 것은 기업 발목잡기라는 불만도 나온다. 과도한 과징금은 투자와 고용, 협력업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 전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수 있게 경제적 유인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입장이다. 경제계는 정부에 개정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후속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산안법 개정안이 1일 국회를 통과한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기업 경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하고 비현실적 기준으로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천문학적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은 기업의 존폐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비판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산안법 개정안을 재석 219명 중 찬성 161명, 반대 52명, 기권 6명으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발생시킨 산업재해로 최근 1년간 근로자 3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사업주에게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행법상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지만 개정안은 이를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우려되는 경우'로 확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는 깊이 공감하나, 상한선조차 없는 영업이익 연동형 과징금은 단 한 번의 사고로도 기업의 존립을 흔들고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등 강력한 제재가 중첩된 상황에서 징벌적 규제 강화만으로는 실질적인 산재 예방을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현장의 다양한 상황과 업종별 특성 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한데, 이런 처벌 만능주의식 입법은 부작용만 더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업이익의 최대 5%라는 기준은 기업 규모에 따라 과징금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며 "대기업의 경우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까지 과징금이 발생할 수 있어 투자와 고용, 협력업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사망자 수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실제 안전보건 의무 위반 여부, 기업 규모, 사고의 반복성, 안전관리 투자 수준, 사고 발생 원인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같은 3명의 사망 사고라도 직원 수가 300명인 기업과 3만 명인 기업의 위험 노출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경제계에선 개정안이 기존의 제재는 유지한 채 새로운 제재를 부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총은 "최근 수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사업주 처벌 강화 입법이 이어졌지만 사후 처벌 정책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강력한 경제벌 형태인 과징금제도를 신설해 중복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사업주 제재이며 산재 예방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징금을 도입하려면 동시에 기존의 형사처벌, 벌칙 등도 정비해서 들어낼 것은 들어내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이 분노할 만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기존의 벌칙이나 형사처벌 수위는 건드리지 않고 계속 옥상옥으로 제재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업에 대해) 근로자를 위험에 내몰고 죄악시하면서 다 (책임을) 뒤집어씌우듯이 하면서 과징금에 형사 처벌 등 (제재 수위를) 높이면 우리나라에서 기업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개정안의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총은 "이번 개정안은 근로자 등의 작업 중지 행사 요건을 완화했는데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 작업 중지 여부 및 범위에 대한 노사 간 이견과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경총은 또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 확보를 위한 작업 중지는 필요하나, 명확한 기준이 부재할수록 이해관계자의 주관적이고 자의적 판단이 개입돼 현장 혼란 심화와 제도 악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계에선 건설업과 제조업이 산안법 개정안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개별 공사 현장에 원하청이 혼재된 상태이기에 안전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업종의 특성상 건설업에 고위험 환경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설업계는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건설업계의 경우 중대재해가 이어지는 건설사에 대해선 고용노동부가 관계기관에 건설업 등록말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별도의 규정까지 담겼다. 게다가 건설업계는 공사비 상승으로 업황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이번 개정안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황도 좋지 않은데 영업이익 최대 5% 부과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은 현장이 많고 협력사 근로자 비중이 높아 '1년간 사망자 3명' 기준은 대형사는 물론 중견사에도 현실적인 위험"이라며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영업이익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은 재무와 신용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협력업체가 많은 건설업 특성을 고려한 별도 세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로 다른 개별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기업 단위로 어떻게 산정할지, 협력업체 사고를 어디까지 원청의 책임으로 볼지 등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건설업은 현장과 협력업체가 많은 만큼 업계 특성을 고려한 세부적인 과징금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장이 많은 건설사는 상대적으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사망자 수만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특히 3명이 사망한 사고와 30명이 사망한 사고를 같은 기준으로 처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사고 규모와 기업별 상황 등을 고려해 제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작업 환경 영향과 외국인 인력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조선업계도 산안법 개정안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복잡한 공정과 다수 협력사가 함께하는 업종 특성상, 하위법령에 현장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개정안의 하위법령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경총은 "경영계는 사업주 제재 및 처벌 강화에만 치우친 입법 추진을 지양하고 실질적인 안전관리 역량 제고를 지원하는 합리적 입법 논의가 추진되기를 요구한다"며 "정부 역시 이번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하위 법령 및 적용 지침 마련에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개정안에는 하위 법령에 위임해서 세부 요건을 정하도록 한 위임 규정이 있다"며 "위반 행위 횟수, 기업 규모, 사망한 근로자 수 등을 고려하게 돼 있는데 무리하게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기업의 존폐를 흔드는 정도의 집행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협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교수는 "대안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기업의 예방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안전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안전관리 전문인력 확충 지원, 위험 사업장에 대한 사전점검 강화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뒤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보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도록 경제적 유인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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