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문하면 1년 후에나"…기판·MLCC 등 AI 부품 공급난 장기화

트렌드포스, 6개 품목 중 GPU 제외 5개 공급 부족 진단
기판 56주·MLCC 30주·D램 20주 '납기 비상'

삼성전자 D램.(삼성전자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인공지능(AI) 투자가 이어지면서 관련 부품의 공급난이 장기화하고 있다. 반도체 기판의 경우 지금 주문하면 약 13개월 이후에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7개월, D램은 4개월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AI 인프라 관련 수요는 폭증한 반면 부품 기업들의 생산능력 확충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어 당분간 가격 상승과 물량 확보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판 약 1년·HDD 50주…GPU 제외 5개 품목 공급 부족

17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최근 조사한 AI 인프라 부품별 납기 일정에 따르면 조사 대상 6개 품목 중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제외한 5개가 공급 부족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품목의 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리드타임은 수급 균형 기준의 2~4.7배에 이른다.

공급 압박이 가장 두드러진 품목은 고성능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ABF 기판이다. 현재 납기는 48~56주로 균형 기준인 12주의 4~4.7배를 기록했다. ABF 기판 확보를 위해서는 주문 후 납품까지 최대 1년 1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AI 인프라 주요 부품 수급·납기 현황.(자료 트렌드포스)/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납기는 50주로 균형 기준인 16주의 약 3.1배다. D램은 기준치 8주보다 12주 긴 20주를 기록했다. 트렌드포스는 ABF 기판과 HDD, D램을 모두 '심각한 공급 부족'으로 평가했다.

MLCC의 납기는 30주로 균형 기준인 12주의 2.5배에 이른다. 낸드플래시 기반 기업용 SSD(eSSD)는 16주로 기준치 8주의 2배였다. 두 품목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제약되는 '공급 부족' 단계로 분류됐다.

AI 연산용 GPU는 현재 납기와 수급 균형 기준이 20~30주로 같았다. GPU 수급이 균형을 이뤄도 메모리와 저장장치, 기판 등 다른 부품의 확보 부담은 여전한 셈이다. AI 서버는 여러 부품을 함께 조달해야 하는 만큼 특정 품목의 공급 병목만으로도 전체 생산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삼성전기가 공급 중인 서버용 FC-BGA 기판.(삼성전기 제공)/뉴스1
기판·MLCC 가격 상승 압력…투자 늘려도 공급 확대 제약

AI 인프라 부품난은 가격과 계약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는 AI 반도체 수요 증가와 공급 확대의 한계로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기판 가격이 오르고 장기 공급 계약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고 본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부품에 주문이 집중되는 반면 공급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기의 FC-BGA와 MLCC 생산시설은 이미 사실상 100% 가동 중이다. 경쟁사 역시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부품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신규 증설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공급 확대 속도가 수요 증가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MLCC는 AI와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평균공급단가(ASP)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며 "전장용과 IT용의 높은 가동률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납기가 길어질수록 고객사의 물량 선점 수요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 공급 계약으로 필요한 부품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면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갖춘 공급사의 가격 협상력이 향상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D램과 eSSD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기판과 MLCC를 생산하는 삼성전기의 공급 역량이 부각될 전망이다. 수급이 빠듯한 제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장기 수주를 확보하고 고부가 제품의 매출 비중을 높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난이 단기간에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설비투자 비용 상승과 공정 생산성 둔화,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따른 웨이퍼 투입 부담이 겹치고 있다. 같은 규모의 공급을 늘리는 데 필요한 투자 부담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의미다.

업계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AI 투자와 장기 공급 계약이 메모리 수요를 뒷받침하는 반면 공급 확대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투자 확대가 곧바로 부품 공급난 해소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세웅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구조적"이라며 "이전과 같은 공급 증가를 위해선 훨씬 큰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구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