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유가 100달러 재돌파…정유·항공 '긴장' 車 전동화 '가속'
두바이유 이어 WTI·브렌트유도 100달러대…후티반군 홍해 장악
정유업 래깅효과, 장기적으론 '부담'…항공업 비용 30% 유류비로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의 전략적 항구도시들을 차례로 장악하자 국제유가가 약 4개월 만에 배럴당 100달러 선을 다시 돌파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석유제품 공급 부족에 따른 정제마진 상승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원유 조달 비용과 운임 상승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유 가격과 유류할증료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 자동차업계는 내연기관차의 유지비 부담이 커지면서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로의 수요 이동이 빨라질 전망이다.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 거래일보다 6.43달러(6.69%) 오른 배럴당 102.4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가 종가 기준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앞서 브렌트유는 지난 9일 런던선물거래소에서 전 거래일보다 3.29달러(3.4%) 오른 101.21달러에 마감하며 7주 만에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국내 수입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이미 지난 2일 배럴당 100달러 선을 4개월 만에 재돌파했고, 10일에는 121.4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 상승은 호르무즈해협과 바브엘만데브해협을 둘러싼 공급 불안이 겹친 결과다. 페르시아만의 주요 산유국이 생산한 원유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으로 빠져나오는 데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지난 10일 후티 반군의 모카 장악으로 홍해의 남쪽 관문인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통항 차질 우려가 커졌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르무즈해협을 피해 동서 송유관으로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운송한 원유를 아시아로 내보내는 우회 공급로의 길목이다. 송유관이 공격받으면서 가동이 중단됐고 두 해협의 통항이 동시에 제약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중동산 원유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내 정유업계는 후티 반군발(發)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수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확보한 원유로 생산한 석유 제품을 오른 가격에 판매하면서 '래깅 효과'(lagging effect)와 재고평가이익을 누릴 수 있어서다. 석유 제품 가격이 원유보다 큰 폭으로 오를 경우 정제마진도 확대된다.
실제로 지난 2월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올해 1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래깅 효과와 재고평가이익에 힘입어 실적이 급증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영업이익은 2조 1622억 원으로 전년 동기 446억 원 영업손실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S-OIL·010950)은 215억 원 적자에서 1조 2311억 원 흑자로 전환했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004050)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10%, 2901.6% 증가한 1조 6367억 원과 9335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바브엘만데브해협 봉쇄로 공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과 캐나다, 아프리카 등에서 대체 원유를 확보하려면 중동산보다 높은 운송비를 부담해야 한다. 유조선 운임과 전쟁 위험 보험료도 상승한다. 또한 원유 도입이 지연되면 정제 설비 가동률이 떨어져 정제마진 상승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 3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석유 제품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서 래깅 효과마저 제한적인 점도 부담이다.
항공업계는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류비는 항공사 전체 영업비용에서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비용 항목이다. 대한항공(003490)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추산한 올해 연간 유류 소모량은 약 3050만 배럴로,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변동할 때마다 3050만 달러(약 400억 원)의 손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를 인상해 연료비 상승분 일부를 보전할 수 있지만, 항공유 가격이 오른 뒤 할증료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고 비용 전액을 승객에게 전가하기도 어렵다. 또한 할증료 상승으로 항공권 총액이 높아지면 해외여행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고환율까지 이어질 경우 가격에 민감한 저비용항공사(LCC)의 수익성 압박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유류비 부담이 현실화한 지난 2분기 국내 상장 항공사 6곳 중 대한항공을 제외한 5곳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자동차업계는 고유가가 전동화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를수록 연료 효율이 높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유지비 경쟁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신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HEV)와 전기차(BEV)를 합한 전동화 차량의 비중은 53.1%로 전년 동월 43.3%보다 9.8%포인트 상승했다. 고유가와 함께 하이브리드 공급 확대와 전기차 신차 출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동화 차량의 판매 비중 상승이 현대자동차(005380)·기아(000270) 등 완성차 업체의 영업이익 개선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압 배터리 등의 탑재로 전기차 마진율이 내연기관 대비 낮은 데다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와의 경쟁으로 전기차 인센티브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 전무도 이런 이유로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당분간은 전기차 수익성을 일정 부분 양보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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