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3년 차 변호사의 고민, 80만원짜리 세 비서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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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1. 국내 대형 로펌에서 3년 차 변호사로 일하는 A 씨는 비서 3명을 고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매달 5만 원만 주면 각자 잘하는 업무를 지원했다. 세 비서는 A 씨 지시가 많아질수록 월급 인상을 요구했다. 현재 세 비서 월급은 매달 80만 원. 1년 새 인상률만 1500%다. 비용 부담에 비서 인원을 줄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간 각자 업무를 분담하며 축적된 전문성이 있다 보니 누구 하나를 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 씨는 세 비서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비서 없이 혼자 일한 적도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비서를 고용하면서 늘어난 효율성만큼 업무량도 늘었다고 했다. 더는 혼자 업무를 처리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이번 달도 세 비서의 월급을 결제했다. 세 비서는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다.

#2. 자동차 업계에서 7년 차 개발자로 일하는 B 씨는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AI) 에이전트(Agent)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주 회의 일정을 확인하고 각 참석자에게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면 AI 에이전트가 직접 캘린더를 조회하고 참석자 목록을 파악해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고 실제 발송까지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코드 리뷰에 1~3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웬만한 코드는 30분 이내에 리뷰와 분석까지 끝낸다. 대용량 컴파일 코드도 4~5시간이면 분석 보고서를 내놓는다. 그럼에도 B 씨에게도 고민이 있다. 자신이 개발한 AI 에이전트가 언젠가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몰려든다. AI를 사용해 업무가 줄어든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A 씨와 B 씨 상황은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AI가 일을 덜어줬지만 비슷한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AI를 계속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시에 자신의 자리까지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AI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요즘 업계를 불문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꺼내는 최대 화두다.

실제로 이런 변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재직·구직 청년 1000명 가운데 53.9%는 향후 5년 내 현재 또는 희망 직무가 AI로 대체·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특히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무·관리·전문직 등 고노출 직무군에서는 이 비율이 58.4%로 더 높았다.

반면 AI가 업무 전문성과 커리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64.7%에 달했다. AI가 기회인 동시에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A 씨에게 필요한 것은 비서를 더 늘리는 일이 아니다. AI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은 인간이 직접 해야 하는지 정하는 원칙이다. B 씨에게 필요한 것도 AI 에이전트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다. AI가 대신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영역을 스스로 찾아내는 일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AI가 잘하는 일을 인간이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자료를 찾고,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AI에 맡겨도 된다. 오히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맡길지 판단하는 인간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은 AI와 인간의 대결이 아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더 크다. AI를 두려워하기보다 자기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A 씨가 비서를 자르지 못하고, B 씨가 에이전트를 끄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두 사람 모두, AI 없이 일하는 사람보다 한 걸음 앞서 있기 때문이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