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생산이 곧 입찰 자격"…K조선·방산, 야드·공장 확보 속도전

인수·지분투자 등 현지화…생산·기술이전·MRO '풀패키지' 수주 조건
현지화 기회이자 부담… 국내 물량 감소·핵심기술 유출 우려 동시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신현우 기자 = 국내 조선·방산업계가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업계는 현지 조선소 인수나 지분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방산업계는 현지 공장 또는 합작법인 설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보는 다르지만 모두 '현지화'를 위한 행보다.

이는 완제품을 실어 보내는 방식만으로는 발주국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된 영향이다. 현지 생산, 기술 이전, 유지·보수·개조(MRO)를 하나로 묶는 '풀패키지'가 사실상 입찰 자격으로 자리 잡았다.

HD현대, 美 조선소 인수 추진…한화, 오스탈USA 인수 타진

2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267250)의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009540)은 올해 상반기 미국 현지 법인 'HD현대 USA'를 설립하고, 미국 조선소 인수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이 법인은 향후 미국 조선소 인수를 비롯한 현지 주요 투자 업무를 맡을 전망이다. HD현대는 현재 미국 조선소 인수 및 지분 투자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복수의 기업과 협상을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국면에서 현지 생산 기지를 통한 직접 수혜를 노린 행보로 풀이된다.

한화(000880)그룹은 2024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이후 5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해 연간 1~1.5척인 건조 능력을 20척까지 끌어올리고 인력을 7000~1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최근에는 미국 해군 함정과 핵추진잠수함 모듈을 만드는 오스탈USA로 눈을 돌렸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인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오스탈 USA의 사업 법인과 운영 자산 100% 인수를 위한 예비적·비구속적 제안을 냈다.

인수가 실현되려면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및 국방방첩보안국(DCSA) 승인 등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 전쟁부(국방부), 미 해군 및 해안경비대, 호주 국방부 등과의 협의도 필요하다. 이번 인수 추진은 상선에서 함정·잠수함으로 영역을 넓히는 포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 조선소 인수는 마스가와 연계된 현지화 요구에 맞춘 대응인데, 이 같은 움직임은 다른 나라에서도 늘어날 수 있다"며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만큼 국가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방산 현지화 요구 확대로 생산시설 등 구축…동반자 넘어 경쟁 가능성도

방산도 수주 구조가 바뀌고 있다. 현대로템(064350)은 2022년 폴란드와 K2 전차 1차 수출 계약을 맺고 지난해 180대 인도를 완료했다. 국내 생산 완제품 수출 형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체결한 2차 계약은 결이 다르다. 2차 계약에선 K2 전차 180대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중 K2 전차 116대는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하지만 폴란드형 K2 전차(K2PL) 64대는 초도 물량 3대만 국내에서 제작하고 나머지 61대는 폴란드 글리비체 소재 방산업체 부마르-와벤디 공장에서 직접 생산된다.

지난 4월 현지 생산·정비 협력 계약이 체결되면서 전후방 카메라·관성항법장치 등을 폴란드 산으로 채우는 '폴리시 설루션'도 확정했다. 더욱이 구난·공병·교량전차 대부분도 현지에서 조립해 인도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폴란드 WB그룹과 합작법인(HWB)을 세우고 천무 유도탄 현지 공장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말 폴란드 군비청과 4조 6000억 원 규모의 천무 유도탄 3차 실행계약을 맺었다.

이어 올해 3월 HWB와 라이선스 3410억 원·부품 공급 2조 241억 원 규모의 후속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33년 10월까지다. 기술과 부품을 공급하며 현지 생산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호주에서는 질롱시 'H-ACE' 공장 2단계 증축을 마쳐 자주포와 장갑차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2023년 12월 호주 정부와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IFV) 129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지 약 2년 만에 이뤄진 후속 조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공장을 호주와 한국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전략적 생산 및 MRO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업계는 현지화를 수주 진입 장벽을 뚫는 열쇠이자 장기 수익 기반으로 꼽는다. 라이선스료와 부품공급, MRO 매출이 계약 기간 내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담도 뚜렷하다.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질수록 국내 본사와 협력사 물량은 줄고, 기술 이전 범위가 넓어질수록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은 커진다.

특히 폴란드 정치권이 현지 생산 K2PL의 제3국 수출을 위해 정부 간 계약 특별법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점은 현지 파트너가 장기적으로 경쟁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기술 이전·MRO를 하나의 패키지로 요구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는데, 현지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어떤 공정과 부품을 국내에 남기고 무엇을 이전할지 처음부터 철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hwsh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