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반도체 메가특구의 시간 싸움

박기호 산업1부  차장
박기호 산업1부 차장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인텔은 PC 시대를 주름잡던 반도체 제왕이었다. 당시 모든 전자제품에는 인텔의 반도체가 들어갈 정도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인텔의 영광은 모바일 시장으로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급격히 추락했다. 기술 전환의 타이밍을 놓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첨단산업에선 '영원한 강자나 패자'가 없다. 한국의 반도체 국가대표인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기업으로 등극했지만 1년 전만 해도 반도체 부문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실기하면서 33년 동안 지켰던 세계 D램 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넘겨주는 수모도 겪었다. 삼성전자는 명예 회복을 위해 절치부심했고 가까스로 D램 왕좌를 탈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위협하는 SK하이닉스 역시 2000년대 초반 파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사활을 걸었던 HBM 개발에 성공하면서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대서사를 쓰게 됐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자 반도체는 필수 인프라로 급부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활발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개적으로 "저도 (메모리를 달라는) 엄청난 로비와 압력,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할 정도다. 반도체 산업이라는 '새로운 금맥'이 발견되자 당연히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경계하는 추격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국가적 역량을 결집,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올해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7%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메모리 글로벌 3사를 맹추격 중이다. 아직은 기술 격차가 있지만 성장세가 매섭다.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1년 뒤 CXMT의 시장 점유율은 지금과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업종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과 도전을 목도했던 터라 반도체 업종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정부도 메가 프로젝트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사업의 뒷받침을 위해 과감한 규제 혁신부터 인프라 구축에 나서기로 했지만 시작부터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산업계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R&D 인력의 근로시간 유연화를 요구하고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과 건강권 침해를 우려하면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되고 주요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게 된 데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존재했다. 노동권 보호 목소리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업종과 활동 영역을 불문하고 획일적인 시간 규제로 묶는 것이 최선인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안 돼'가 아니라 업계의 현실도 고려한 유연함을 고민할 때다. 노동권 보호를 위해 52시간제의 원칙은 준수하되 예외 적용 대상은 철저하게 핵심 R&D 인력으로 제한하면 된다. 대신 본인들의 동의를 전제로, 보상은 두둑이 하며 건강권을 보장하는 보호 장치를 두는 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 52시간제를 지키면서도 산업별 특성에 맞게 개선하자는 것이다. 지난 8월 1~10일 우리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46.8%에 달했다. 반도체가 없는 대한민국 경제는 이제 상상할 수 없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