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20분 휴식·기사는 작업중지권…택배업계 달라진 폭염 대응
2024년 법 개정·지난해 세부기준 시행…올해 1000곳 점검 뒤 본감독
센터는 실제 교대휴식, 기사는 불이익 없는 작업중지가 핵심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체감온도 33도 이상 작업장에서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 쉬도록 한 폭염 휴식 의무에 대한 정부 감독이 본격화하면서 택배업계가 고용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보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물류센터 근무자에게는 회사가 편성한 교대휴식을 적용하는 반면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에게는 스스로 배송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이에 따른 면책권을 부여한다. 같은 택배망 안에서도 근로계약 여부에 따라 폭염 대응 방식이 갈리는 구조다.
19일 고용노동부와 업계에 따르면 올해 체감온도 33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물류·택배 현장의 의무 휴식 기준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정부는 2024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폭염과 한파에 장시간 노출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사업주가 예방해야 할 위험으로 명시했다. 이어 지난해 7월 17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체감온도 33도 이상 작업장에서 근로자에게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했다.
체감온도가 31도 이상인 장소에서 2시간 이상 연속 작업할 때도 사업주는 냉방·통풍장치 가동, 작업시간대 조정, 주기적인 휴식 가운데 하나 이상의 조치를 해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달 건설·조선·물류 등 폭염 고위험 사업장 1000곳을 집중 점검한 뒤 6월 15일부터 본격적인 감독으로 전환했다. 물류·택배업은 실내 작업장이라도 환기가 어렵고 차량과 설비에서 발생하는 열이 더해질 수 있어 관리온도 설정과 냉방·환기, 쉼터 설치, 보랭장구 지급, 실제 휴식시간 부여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온열질환자는 2023년 2818명에서 2024년 3704명, 지난해 4460명으로 3년 연속 늘었다. 지난해 환자의 32.1%인 1431명이 실외 작업장에서 발생했고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종사자가 1160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 대형 택배사는 외부 기온과 관계없이 6월부터 9월까지 물류센터 근무자에게 2시간 작업 후 20분의 휴식을 부여하고 있다. 택배기사와 센터 근무자 등 2만여 명에게 생수와 식염정, 쿨토시 등을 지원하고 전국 30여 개 사업장에는 간이쉼터 56개를 설치했다.
센터 밖에서 배송하는 택배기사에게는 폭염 관련 기상경보와 대응 요령을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실시간 전달한다. 온열질환 발생 우려 등 안전상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기사가 스스로 배송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배송 지연에 따른 책임도 묻지 않는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이전부터 체감온도 기준을 초과하면 센터 근무자에게 2시간 작업당 20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보장해 왔다"며 "올해도 기준 적용에 따른 작업시간이나 현장 운영의 변동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택배사는 물류센터 근무자에게 법정 기준보다 휴식 주기를 앞당긴 100분 작업 후 20분 휴식을 권고한다. 냉방시설과 이동식 에어컨, 냉풍기, 제빙기를 보강하고 생수와 냉감용품 지급도 확대했다.
이 회사도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에게 정해진 휴식표를 일괄 적용하는 대신 폭염과 풍수해 등 안전상 위험이 있을 때 스스로 배송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율적 작업중지권과 면책권을 운영한다.
센터와 배송 현장의 대응 방식이 다른 것은 회사가 작업을 관리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류센터에서는 회사나 협력업체가 작업조를 편성해 순차적으로 휴식을 줄 수 있지만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맺고 각자 맡은 구역과 물량에 따라 움직인다.
물류센터는 생산라인처럼 전체 공정을 일정한 시각에 동시에 중단하는 구조도 아니다. 택배사들은 간선차량 입·출차와 시간대별 물량 흐름에 맞춰 작업조를 교대하는 방식으로 별도 인력 충원 없이 휴식시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감독은 택배사가 폭염 대책을 마련했는지를 넘어 각 보호 장치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는 냉방설비와 쉼터 설치뿐 아니라 체감온도를 적정한 위치에서 측정하고 작업조별 휴식을 실제로 부여하는지가 핵심이다. 고용부는 지난달 물류·유통업 최고안전책임자(CSO) 간담회에서 일부 물류센터가 에어컨 바로 앞에서 체감온도를 측정한 사례를 지적하고 실질적인 교대 인력과 휴식 운영을 요구했다.
택배기사에게는 본사가 부여한 작업중지권이 대리점의 물량 배정과 배송 평가 과정에서도 불이익 없이 보장되는지가 중요하다. 본사가 배송 중단에 따른 면책권을 선언하더라도 대리점이 배송 완료 시간이나 수행률을 이유로 담당 구역과 물량을 조정하면 작업중지권이 형식적인 제도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연맹 택배노조는 일부 배송시장에서 배송 완료 시간이나 수행률을 맞추지 못하면 담당 구역을 회수하는 운영 방식이 기사들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키운다고 주장해 왔다.
택배업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2021년 561건에서 지난해 1516건으로 2.7배 증가했다. 사고성 재해는 같은 기간 475건에서 1341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산재 승인을 받은 택배업 사망자는 14명으로 집계됐다.
본사 정책과 대리점 운영 사이의 간극은 국토교통부의 점검 대상으로도 떠올랐다. 국토부는 택배업 위수탁계약에 표준계약서 또는 이를 기초로 작성한 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일부 영업점에서 별도 합의를 통해 휴무일 없는 연속 근무를 유도한 의심 사례가 확인되자 15일 전국 단위 현장 점검에 착수했다.
국토부는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를 우회하거나 택배기사에게 부당한 근무 조건을 요구한 사실이 확인되면 개선명령과 과태료 부과 등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선 냉방기와 쉼터를 늘리고 작업중지권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폭염 대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20분 휴식과 멈출 권리가 전국 협력업체와 대리점의 물량 배정·배송 평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사의 안전 지침이 현장의 실제 권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기존 작업조 안에서 순차적으로 휴식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별도 인력 충원보다 냉방설비와 예방물품 등 현장 안전 지원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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