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돼지들이 먼저 다가왔다"…국내 최대 동물복지 양돈농장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 생산 선도하는 팜스코
- 한송아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돼지들이 먼저 다가왔다.
최근 찾은 경기도 이천 팜스코 동물복지 양돈농장. 낯선 사람들이 돈사 안으로 들어서자, 돼지들은 일제히 반대편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초 뒤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기자가 내민 손에 코를 갖다 댔다. 냄새를 맡던 돼지는 이내 빤히 얼굴을 쳐다봤다. 다른 돼지들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몰려들었다.
핀란드 동물복지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친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이날 직접 돈사 안으로 들어가 돼지들의 행동을 평가했다. 그는 "동물복지 평가에서 낯선 사람이 들어왔을 때 돼지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는지 보는 항목이 있다"며 "구타를 당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천농장의 돼지들은 사람이 들어오자 1초도 채 되지 않아 곧바로 다가왔다.
윤 교수는 "돼지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팜스코 이천농장은 일반적인 일관농장과는 다르다. 번식부터 출하까지 모두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모돈 농장에서 태어난 체중 7㎏ 안팎의 자돈(새끼 돼지)을 공급받아 출하 체중까지 키우는 비육 전문 농장이다.
현재 약 3만500두를 사육하고 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돼지 농장 중 가장 큰 사육 규모다. 원래 시설 규모로는 4만 마리 가까이 사육할 수 있지만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적용하면서 사육 두수를 약 20% 줄였다. 돼지 한 마리당 더 넓은 생활 공간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신 샤워와 소독 절차를 거쳐야 했다. 농장별 전용 장화까지 구분해 사용하는 등 차단방역도 철저했다.
농장에 들어서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냄새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농장 입구는 물론 돈사 주변을 걸어도 돼지농장 특유의 강한 악취를 느끼기 어려웠다.
팜스코는 바이오필터를 포함한 3중 악취 저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암모니아 농도 역시 동물복지 인증 기준인 25ppm보다 낮은 10ppm 수준으로 관리 중이다.
돈사 안의 돼지들은 모두 누웠을 때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음수기와 급이기도 추가 설치해 먹이 경쟁을 줄였다.
변상천 농장장은 "동물복지 전환 이후 돼지들이 보다 건강하게 크는 모습을 체감하고 있다"며 "올해 자돈 육성률 98%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목표에 근접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국내 양돈장의 자돈 육성률은 80%대 중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농장 곳곳에는 돼지들의 무료함을 줄이기 위한 장난감이 눈에 띄었다. 놀이기구로 재활용한 사료 라인 체인과 파란색의 정화조 부력 공이 설치돼 있어 돼지들이 코로 밀고 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윤 교수는 "돼지는 매우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며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면 다른 돼지의 꼬리나 귀를 물어뜯는 문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돼지들도 장난감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를 넣어주면 돼지가 갖고 놀다가 나무에 코를 기대거나 몸을 붙인 채 잠들 정도로 좋아한다"며 "동물복지는 공간만 넓히는 것이 아니라 돼지가 돼지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물복지 기준은 사육 과정뿐 아니라 운송과 계류, 도축 단계에도 적용된다. 이 때문에 농장뿐 아니라 운송 차량과 도축장도 별도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 농장에서는 이동을 위해 몰이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탬버린 소리를 활용해 새끼 돼지를 이동시킨다. 출하 과정에서도 전기 충격기 사용이나 강압적 몰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차량 상하차 시에도 일반 농장보다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농장 곳곳에 설치된 CCTV도 눈길을 끌었다.
변상천 농장장은 "설비 데이터만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돼지들이 편안하게 쉬고 있는지, 특정 구역에 몰려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확인한다"고 말했다.
약한 개체들은 별도 공간에서 관리한다. 이 역시 동물복지 인증 기준 가운데 하나다.
팜스코는 현재 국내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 생산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국내 동물복지 인증 돼지 출하 규모는 월 약 1만5000두 수준이다. 이 가운데 팜스코의 월 생산량은 약 9000두로 60%에 달한다.
하지만 경제성은 여전히 숙제다.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사육 공간 확대와 시설 개선에 따른 초기 투자비가 필요하다. 사육 마릿수가 줄어드는 데다 동물복지 운송 차량과 도축장 이용에 따른 물류비 부담도 발생한다.
팜스코에 따르면 동물복지 사육으로 인해 돼지 한 마리당 약 3만원의 추가 생산비가 발생한다. 문제는 굽는 소비문화가 발달한 국내 문화 특성상 돼지 한 마리에서 동물복지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부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팜스코는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전량 코스트코에 납품하고 있다.
코스트코 온라인몰 기준 판매되는 국내산 일반 삼겹살 가격은 100g당 약 2695원, 동물복지 인증 삼겹살은 3063원이다. 600g(1근) 기준으로 환산하면 각각 1만 6170원과 1만 8378원으로 약 2200원 차이가 난다.
115㎏ 돼지 한 마리를 출하하면 삼겹살과 목살은 약 15㎏ 정도 나온다. 결국 농가 입장에서는 이 15㎏에 동물복지 투자 비용을 반영해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다. 국내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부위 위주로 동물복지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 상황이라 투자비를 회수하기 쉽지 않다.
문두환 대한수의사회 수석부회장(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상무)은 "대기업이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있다"며 "일반 농가가 쉽게 도전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동물복지 인증 제도가 도입된 지 약 13년이 지났지만, 유통되는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동물복지 축산 확대는 정부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최근 충북 음성에 위치한 팜스코 동물복지 도축장을 찾아 동물복지 인증 돼지의 계류와 도축, 가공, 포장 전 과정을 둘러봤다.
도축장 입구에 걸린 '돼지가 행복해야 사람이 건강합니다'라는 문구는 현장을 찾은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팜스코는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확대, 동물복지 축산 실천에 따른 생산비 부담 완화, 인증 축산물 표시 방식 개선, 국내 실정에 맞는 인증 기준 정비 등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정부도 동물복지 축산 확대를 위해 홍보 강화와 제도 개선, 인센티브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연구에서는 돼지가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일수록 면역력이 높고 질병 발생이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됐다"며 "동물복지는 건강한 축산물 생산과 항생제 사용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점수 팜스코 대표는 "동물복지 축산은 농가의 노력만으로 확대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선택할 때 더 많은 농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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