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요금 없다더니"…배전망 ESS 혼선 확산에 정부 "유예 검토"(종합)
한전, 호남 AI ESS 사업 송배전 이용요금 부과 방침에…업계 반발
기후부 "전국 면제 아니다" 해명…배전망 포화지역 유예 검토
-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정부가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구축을 위해 추진 중인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이 입찰 마감을 코앞에 두고 대혼란에 빠졌다. 한국전력이 배전망 ESS에 송배전 이용 요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갑작스럽게 밝히면서다. 그동안 망 이용료 부담을 호소해 온 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비판과 함께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에 대해 전력망을 이용한 경우 망 이용요금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배전망 포화지역에 한해 요금 부과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올해 국비 1171억 원을 투자하는 'AI 활용 ESS 구축지원 사업'을 공고하고 오는 29일 입찰 마감을 앞두고 있다. 이 사업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에 발맞춰 배전망 포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20개소 이상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85개의 ESS 구축을 목표로 하는 국책 프로젝트다.
문제는 지난 15일 한국에너지공단 주관으로 열린 사업자 간담회에서 불거졌다. 한전은 이 자리에서 재생에너지가 밀집된 호남 지역의 AI 활용 ESS 사업에 배전망 이용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한전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입찰 참여를 준비하던 사업자들은 "사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치"라며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사업자들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이용 요금 부과가 최근 정부 기조와의 온도 차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규제합리화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전국적으로 배전용 ESS에 대해 망 요금 부과 없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했던 김 장관의 보고와 정반대의 행보가 나오면서 현장의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배전용 ESS 사업자의 망 이용료 부과에 대한 부담을 여러 차례 호소해 왔다. 여기에 정부가 ESS 시설의 보급 확대를 강조해 온 만큼 현장에 혼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한전의 이번 방침으로 정책 신뢰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논란의 핵심은 ESS의 '충전'을 일반 전력 소비로 볼 것인지 여부다. 한전은 재생에너지 전력을 저장하기 위한 충전 단계에 대해 일반 수요 고객과 동일하게 송배전 이용 요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ESS의 충전과 방전을 별개의 행위가 아닌 하나의 완결된 '발전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전 전력은 최종 소비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방전(발전)하기 위해 임시로 투입되는 전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반 전기 소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제도적으로도 명확하게 요금을 부과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 규정 역시 고객을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고객'과 '전기를 사용하는 수요고객'으로만 구분하고 있어 ESS와 같은 신사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유사 사례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양수발전의 경우 물을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지만, 현재 망 이용 요금 부과 유예가 검토되고 있다. 업계는 양수발전과 배전용 ESS 모두 전력 계통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설비라는 점에서 동일한 수준의 유예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전의 방침대로 망 이용 요금이 부과될 경우, 사업성 악화에 따라 향후 배전용 ESS 사업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간담회에서 한전이 밝힌 배전망 ESS의 망 이용료는 연간 5000만 원 수준이다. 반면 사업 참여 시 ESS의 주 수익원으로 기대되는 용량 정산금은 연간 3억 4000만 원에 불과하다. 기대 수익의 약 15%가 고스란히 망 요금으로 빠져나가게 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배전용 ESS 사업의 안착과 확대를 위해 ESS도 일반 발전사업자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망 사용료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야 한다고 업계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전용 ESS는 단순 전력 소비 설비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안정화를 위한 공공적 성격의 인프라"라며 "차세대 전력망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정부와 유관 기관이 합리적인 이용 규정 개정과 망 이용 요금 유예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기후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지난 4월 15일 대통령 주재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메가특구에 한해 부과를 일시적으로 배제·완하겠다고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5극3특 성장엔진과 연계된 특구 모델 내에서만 광범위한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기후부는 또한 "전력망을 이용하는 모든 사용자가 예외 없이 망 이용요금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ESS 또한 예외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기후부는 "배전망 포화지역에 대한 ESS 설치로 계통혼잡 완화가 입증되는 등 계통 기여도에 따라 요금 부과를 유예하는 기준을 검토 중"이라며 계통 안정화 기여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 적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pkb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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